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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깐깐한 ‘독일 할배’ 아이허는 곧 ECM이다

입력 | 2013-09-02 03:00:00

2013년 9월 1일 일요일 맑음. 판보다 할배. #73 Keith Jarrett ‘My Song’(1978년)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전시장. ECM 음반들이 붙은 벽 앞에 만프레트 아이허(가운데)가 서 있다. 카리스마 있다.

지난 주말, 세계적인 음반사 ECM 레코드의 수장인 만프레트 아이허를 만나고 왔다. ECM은 키스 재릿, 팻 메스니, 얀 가르바레크 같은 재즈 뮤지션의 앨범을 제작해 온 전설적인 음반사다. 관조적인 음악, 단조로운 톤의 인상주의적 이미지의 음반 표지는 ECM의 전매특허다. 44년 됐지만 왠지 440년 된 족보 냄새가 나는 회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8월 31일∼11월 3일) 개막 리셉션장은 붐볐다.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 한국에 온 아이허를 발견했다. 올해 나이 일흔. ‘독일 할배’는 깐깐했다. 이때다 싶어 사진 한 방 같이 찍자고 했더니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 봐서”란다. 5초 전에 다른 여자 분들이랑은 찍어 놓고….

약속대로 다음 날 전시장을 찾았다. 고집스레 음향을 체크하는 긴 백발의 아이허. 그가 연 음악 감상회는 50분이나 늦게 시작됐지만 ECM 마니아 100여 명의 기다림은 성당 고해소 앞에서처럼 경건했다. 어둠침침한 실내 분위기는 ECM의 음악과 결합돼 나를 극도로 관조적인 상태로 몰고 갔다. 나도 몰래 몇 번 고개를 끄덕인 건 ‘할배’에 대한 경의였겠지.

아이허는 감상회가 끝나고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오래전부터 한국과 일본의 전통 음악을 들어 왔다고. “ECM 음악의 우울한 분위기 탓에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치료제’를 낼 생각 없느냐”는 한 음악 팬의 물음엔 “어떤 멜랑콜리(우수)는 오히려 에너지를 주고 생각하게 만든다. 행복한 음악이 당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덤덤히 답했다. ECM 팬들은 “내가 살아 있을 때 한국에 와 준 당신이 고맙다”는 뜨거운 사랑 고백도 했다.

‘짐은 국가’라고 했던가. ‘아이허는 ECM’이다. ECM은 아이허의 맘에 드는 음악을 아이허가 고른 표지에 담는, 개인 컬렉션 같은 음반사라고들 한다. 그렇담 ‘판보다 할배’네. 무엇이든, 할배, 리스펙트(respect·존경)!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