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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 3중추돌 사고]자동차단 시스템 없이… 2개의 신호가 헷갈리게 나란히

입력 | 2013-09-02 03:00:00


대구역 열차사고에서 무궁화호 기관사가 “2번 신호기(KTX용)의 녹색 신호등을 1번 신호기(무궁화호용) 것인 줄 알고 착각해 열차를 출발시켰다”고 해 논란이 된 대구역 사고지점의 신호기 모습. 1번 신호기(위쪽)가 지선에서 본선으로 합류하는 무궁화호의 신호이며 2번 신호기가 본선을 운행하는 고속철도(KTX) 신호기다(점선 안). 사고가 난 뒤 코레일은 기관사들이 동시에 2개의 신호기를 볼 수 없도록 1번 신호기를 90도 돌려놨다.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하마터면 대형 인명 피해가 일어날 뻔했던 대구역 열차 추돌사고 현장. 본보 기자가 1일 이곳에서 확인한 결과 사고 열차 기관사가 착각했다던 1번 보조 신호기(무궁화호용)와 2번 본선 신호기(KTX용)는 나란히 붙어 있었다. 형태와 위치, 높이가 똑같아 언뜻 봐서는 기관사 말대로 헷갈릴 만했다. 신호기를 구별하는 것은 번호가 적힌 안내판이 전부였다. 사고 직후 무궁화호 선로와 신호기는 폐쇄됐다.

지난달 31일 대구역에서 발생한 고속철도(KTX)와 무궁화호의 추돌 사고는 안전 불감증과 허술한 열차 관제 시스템이 빚어낸 전형적인 ‘후진국형 재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KTX가 다른 열차와 부딪쳐 선로를 이탈한 것은 2004년 KTX 개통 이후 처음이다. 2011년 2월 11일 경기 광명역 인근 일직터널에서 KTX 탈선사고가 난 적은 있지만 당시에는 선로전환기 오작동 문제였다. 철도 관계자들은 “이번 기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철도 안전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코레일은 1일 지역본부장급 2명과 대구역장 등 임직원 5명을 직위해제했다.

○ 기관사와 여객전무 모두 신호 착각

현재까지 드러난 사고 원인을 종합해보면 이번 사고는 현장 인력들의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구역에서 정차했다 출발해야 하는 무궁화호 1204호는 신호대기를 무시하고 출발했다. 무궁화호 기관사 홍모 씨(43)는 녹색 신호등이 켜진 것을 보고 열차를 진입시켰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홍 씨가 본 녹색 신호등은 KTX용 신호등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승객의 안전한 승하차 여부와 신호기 상황을 기관사에게 제대로 알려야 할 임무가 있는 여객전무인 이모 씨(56)도 신호기를 잘못 보고 기관사에게 “출발하라”고 무전을 보냈다. 홍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객전무가 ‘발차합시다’라는 무전을 보내왔고 고개를 들어보니 신호기(2번)에 녹색등이 켜져 있어 35km 속도로 열차를 진행시켰다”고 말했다. 대구역 열차 관제실은 출발 여부를 알려주는 무전을 기관사에게 별도로 보내지 않았으며 1차 추돌사고가 난 뒤에도 대구역으로 진입하던 하행선 KTX 열차에 사고 연락을 취해주지 않아 2차 충돌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대구역 관제실에서 사고 상황을 하행선 KTX에 통보해줬다면 KTX 열차 간의 2차 충돌은 막을 수 있었다.

박용진 계명대 교수(교통공학과)는 “기관사의 육안에 의존하는 시스템 대신에 KTX가 지나갈 때 다른 노선에서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자동 시스템을 갖춰야 이번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를 낸 무궁화호에는 홍 씨 혼자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홍 씨는 경찰 조사에서 “예전과 달리 혼자서 운행과 신호 안전 등을 책임지다 보니 제대로 업무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코레일 측은 “2007년 전기기관차를 도입한 이후 ‘1인 승무제’를 원칙으로 정해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 허술한 관제 시스템도 문제

전문가들은 이런 드러난 사고 원인에도 불구하고 코레일의 허술한 관제 시스템과 내부 기강해이 등 숨어있는 문제 탓에 이번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철도 사고가 주기적으로 반복된 것은 현장 직원 한두 명의 실수 이외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구조적 문제는 관제 시스템이다. 대구역은 기관사가 바쁘고 번거롭다는 핑계로 관제를 기다리는 대신에 단독으로 신호기를 보고 출발하는 사례가 많다. 2008년 2월 하행선 본선 진입을 기다리던 화물 열차가 빨리 출발해 무궁화호와 충돌한 사고도 비슷한 경우다.

8월 31일 오전 대구역에서 서울로 향하던 부산발 고속철도(KTX) 4012호 열차(왼쪽)와 무궁화호 1204호 열차(오른쪽)가 충돌한 채 선로를 벗어나 있다. 이번 사고는 무궁화호 열차가 본선을 운행하고 있는 KTX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선로에 진입하다 충돌하면서 빚어졌다. 찢긴 KTX 열차 옆면을 보면 9량이 탈선한 사고 당시의 충격을 짐작할수 있다. 대구=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여기에 2012년 1월 서울 영등포역의 KTX 역주행 사고나 3월 동대구역 역주행 사고의 경우처럼 철도 관제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두 사고 모두 역에 정차해야 할 KTX 차량이 제대로 관제를 받지 않고 역을 지나쳤다 ‘후진’한 경우다. 국토교통부 당국자는 “운행하는 기관사와 관제하는 관제사가 모두 코레일 소속이어서 이 같은 문제가 종종 벌어진다”고 전했다. 관제 주체를 코레일에서 분리할 경우 기관사가 신호기를 보고 ‘알아서’ 출발하는 등의 문제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국토부는 지난해 초 코레일에 철도 관제를 위탁하는 내용이 담긴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해 철도 관제권을 국토부가 회수하겠다고 밝혔으나 철도 노조가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위한 초석”이라며 반대하고 나서 무기한 연기했다.

여기에 여객전무인 이 씨의 투입 과정도 코레일의 ‘내부 기강 해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된다. 무궁화호 기관사 홍 씨에게 출발 신호를 보낸 그는 사무직원이지만 이날 여객전무로 근무했다. 코레일이 열차 승무원과 역무원의 순환 전보를 추진하자 철도노조는 이에 반발해 7월부터 휴일근무를 거부하고 있다. ‘대체 근무’에 나선 그가 현장 상황에 익숙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코레일 측은 “본부 직원이기는 하나 10년이 넘은 열차승무원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측은 “사측의 고유 업무인 인사 조치에 대해 노조 측이 휴일근무를 거부하면서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상황이 코레일 조직 기강 해이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송충현 기자·대구=장영훈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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