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국제부 차장
‘잃어버린 20년’을 배경으로 삼은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통해 일본이 다시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는 1992년 입사한 유능한 대출 담당 은행원. 그는 기업의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새로운 은행 시스템을 꿈꾼다. 그의 반대편에는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파벌 싸움을 일삼는 은행 내 ‘나쁜 놈’들이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100% 선량하지 않다. 자신의 이익은 악바리처럼 챙긴다. 지점장의 약점을 잡아 승진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규정도 무시한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주요 덕목으로 여기는 일본인의 품성과도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일본이 여유를 잃어서 이처럼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는 캐릭터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러나 드라마에는 또 다른 ‘공감의 줄기’가 있다. 난관에 처한 한자와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도움’을 주변의 친구에게서 받곤 하는 것이다. 이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과의 관계를 항상 소중히 여겨라’ ‘절대 로봇처럼 일하지는 마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름으로써 주위 사람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인기를 얻다 보니 온갖 해석이 나온다. 일본 은행의 병폐에 맞서는 한자와를, 일본을 바꾸겠다고 주창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투영하는 시각도 그중 하나다. 그런 이들이 있다면 이 드라마의 미덕이 ‘주변(이웃)의 도움 없이는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점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일본 드라마를 볼 때 잡념 없이 그냥 즐기기만 할 수 있는 한일관계가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허진석 국제부 차장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