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화상시스템으로 동시 조사 추진
2008년 잔혹하게 성폭행당한 ‘나영이’(가명·당시 8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또다시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당시 검찰이 경찰 조사 뒤 추가로 나영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상녹화 장비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나영이는 배변주머니를 찬 상태로 피해 사실을 여러 차례 반복해 진술해야 했다. 피해 가족은 “검찰이 2차 피해를 줬다”며 국가를 상대로 3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1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서울고검은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상고하지 않았다.
성폭력을 당한 10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이 수사기관에서 여러 차례 진술하면서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검찰과 경찰이 화상시스템으로 동시에 조사하는 방안이 이르면 11월 말부터 추진된다.
2일 대검찰청 형사2과(과장 강지식)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시범청으로 지정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김홍창)와 보라매원스톱지원센터에 화상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도록 이번 주 내로 나라장터에 입찰 공고를 올릴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경찰과 검찰 조사가 따로 이뤄져 추가 조사가 불가피한 경우가 많았다. 화상시스템 도입 대상이 될 10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은 특히 피해 사실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 할수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위험성이 높다. 경찰은 조사에 앞서 피해자와 부모에게 화상시스템으로 조사가 동시에 진행된다고 고지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직접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자칫 놓치는 것도 관찰자 입장에서는 보일 수 있어 상호 보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경의 동시 조사는 증거력 보강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사건을 가장 생생하게 기억할 때 한꺼번에 조사하면 가해자 기소 및 유죄 선고 비율을 높일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아동과 장애인은 여러 번 진술할수록 사건 당시를 기억하는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는 피의자가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데 빌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일각에서 ‘수사에 개입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기도 하지만 대검찰청 관계자는 “피해자 보호가 목적인 만큼 경찰의 협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화상시스템을 서울중앙지검에서 시범 운영해본 뒤 전국 검찰청으로 확대할지를 결정할 방침이다.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는 올해 초 ‘원스톱지원센터와 검찰청 간 화상시스템에 의한 피해자 조사’ 방안을 국정과제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4대 악 중 하나인 성폭력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