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in 서울]1795년 노들나루 도강
배다리 도강 행렬 재현 2007년 하이서울페스티벌 프로그램으로 배다리를 건너는 조선 정조 반차 행렬을 재현한 모습. 서울시 제공
배를 타야만 건널 수 있었던 한강에 최초로 놓인 다리는 조선시대의 주교(舟橋·배다리)다. 선왕의 능을 참배하는 왕의 도강을 위해 배를 밧줄로 엮어 만든 임시 다리다. 주교를 가장 많이 이용한 왕은 정조다.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경기 수원에 조성한 이후 매년 한 차례 이상 이곳을 방문하려 한강을 건넜다.
1789년 12월 정조는 배다리 전담 관청인 주교사(舟橋司)를 설치했다. 주교사에서 검토한 배다리를 놓을 후보지는 노들나루(현재 한강대교 일대), 동호(현재 동호대교 일대), 빙호(동빙고·서빙고 지역, 동작대교 인근) 등으로, 오늘날 주요 한강 다리가 놓인 지점과 일치한다. 이 가운데 강폭이 좁으면서도 물의 흐름이 빠르지 않고 수심도 깊은 노들나루가 최종 건설지로 선정됐다. 이 유역 한강의 폭은 330∼340m. 1916년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첫 다리인 한강인도교(현 한강대교)가 이곳에 지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다리를 놓는 데 36척의 배가 징발돼 쓰였다. 다리는 모양과 실용성을 고려해 가운데는 높게, 양쪽 끝으로 갈수록 낮게 만들었다. 다리의 양편에는 파(把·180cm)마다 난간을 설치하고 바닥에는 잔디를 깔았다. 배다리는 5년 전 정조가 직접 쓴 책인 ‘주교지남(舟橋指南)’의 내용대로 만들었다. 배 12척의 호위까지 받으며 정조 일행은 무사히 한강을 건넜다. 배다리를 건넌 다음 노량진에서 잠시 쉬며 점심을 먹은 뒤 수원 화성으로 향했다. 왕이 돌아와 강을 건너면 배들을 주인에게 돌려보냈다.
서울 동작구 본동에 있는 ‘용양봉저정’. 조선 정조가 배다리로 한강을 건넌 뒤 점심을 먹으며 쉬던 행궁이다
정자에 올라서면 말없이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효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동작구에서 조성한 ‘동작충효길’을 따라 걷는 것도 방법. 동작역부터 노량진역까지 4.7km에 ‘효(孝)’를 테마로 꾸며진 이 길은 용양봉저정, 조선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노한이 3년간 시묘살이를 한 곳에 지어진 효사정(孝思亭) 등을 거친다. 코스 곳곳에 ‘효도전화 의자’도 설치됐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해 보라는 취지다. 용양봉저정은 지하철 9호선 노들역 2, 3번 출구에서 3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정조가 설치한 배다리 전담 관청인 주교사는 1882년 폐지됐다. 1894년을 끝으로 배다리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지금도 경기 양평군에 가면 배다리를 만나 볼 수 있다. 양평군은 지난해 8월에는 두물머리와 세미원 사이 245m 구간에 52척의 목선으로 조선 정조시대 배다리를 재현해 설치했다. 배다리를 설계한 다산 정약용의 생가에서 가까운 곳이다. 전철 중앙선 양수역에서 내려 700m가량 가면 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