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뮤지컬에 대한 반란 뮤지컬 ‘구텐버그’ ★★★★☆
뮤지컬 ‘구텐버그’의 모든 배역을 단둘이서 연기해내는 송용진(위)과 정원영. 쇼노트 제공
‘자, 이제 배우들이 올라오겠구나.’
하지만 그대로 조명이 밝아지고 스태프로 보이던 두 남자가 객석 쪽으로 돌아선다. 이 두 사람이 125분간 관객이 만날 배우 전원이다. 노래를 돕는 건 피아노 한 대뿐.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도, 현란한 조명도, 알록달록한 의상도, 으리으리한 세트도 없다. 얼핏 허전해 보이는 무대를 채우는 것은 시종 흥미진진함을 잃지 않는 이야기와 매력적인 노래다. 잡다한 치장 싹 걷어낸 뮤지컬의 골격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라는 듯한 파격이다.
시커먼 사내들이 새된 목소리로 ‘가슴 큰 시골 여인 헬베티카’와 ‘유대인을 싫어하는 꽃 파는 소녀’의 모자를 뒤집어쓸 때 이 뮤지컬은 모 아니면 도의 도박을 건다. 연기와 노래가 조금이라도 어색할 경우 허름한 무대 위 모든 것이 참고 봐주기 어려운 관객모독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치 빈틈도 없다. 양손에 모자 여러 개를 나눠 쥐고 앙상블 합창인 척하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장면. 두 배우의 담백한 목소리가 절묘하게 교차하며 진가를 발휘한다.
두 사람은 간간이 모자를 벗고 작가로서 뮤지컬 극작 과정을 설명(하는 체)한다. 그 농담의 표적은 클리셰(상투적 표현)에 스스로를 옭아맨 대작들이다. “1부에 잔뜩 일 벌여놓고 2부는 (관객을) 졸게 만들다가 장엄한 피날레로 얼렁뚱땅 수습하죠.” “스토리와 무관한 역사적 배경을 왜 끼워 넣느냐고요? 진지하게 보여야죠!” 그 밥에 그 나물 뮤지컬 무대에 지친 관객에게 ‘구텐버그’는 가뭄에 단비 같은 선물이다. 2006년 오프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뉴욕타임스는 “역사적 사실을 뻥튀기한 스토리, 뻔한 은유를 남발하는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보기 드물게 영리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 : i : :
앤서니 킹, 스콧 브라운 작. 김동연 각색·연출. 장현덕 정상훈 더블캐스트. 11월10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4만4000∼5만5000원. 02-3485-8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