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터는 모든 제품의 제작 방식을 혁신할 잠재력 갖춰” 오바마의 이 한마디가 ‘나의 도전’ 살렸다
2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3D 프린터 제조업체 캐리마 사옥에서 이병극 사장(60)이 자사 제품으로 찍어 낸 모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회사는 광조형 3D 프린팅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있는 낡은 창고형 공장에서 만난 이병극 캐리마 사장(60)은 3D 프린팅 기술을 설명하기에 앞서 기자에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올해 국정연설 얘기부터 꺼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강조하면서 “3D 프린터는 거의 모든 제품의 제작 방식을 혁신할 잠재력을 가졌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 뒤 각국에서 3D 프린터와 관련된 갖가지 개발 지원 계획을 내놓았다. 우리 정부도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3D 프린터 산업 육성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자가 캐리마의 공장을 두 차례 찾았을 때 정부와 기업, 학계 관계자들이 찾아와 3D 프린터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국내에서 광조형 3D 프린터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이 캐리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자신을 포함해 전 직원이 8명에 불과한 작은 제조업체의 경영자이자 기술책임자였다.
이 사장은 국내 3D 프린터 산업의 개척자로 꼽힌다. 100억 원에 가까운 기술개발 투자를 통해 가시광선(빛)을 활용한 적층 방식 3D 프린터 기술을 개발하고 3년 전부터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다. 하지만 매출이 턱없이 적어 사업을 포기할 위기를 숱하게 겪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제조업을 포기하면 회사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심정으로 버텨냈다고 했다.
경북 의성군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사진의 매력에 빠져 정규 대학 졸업장을 포기했다. 그 대신 어깨너머로 사진 인화 기술을 배웠다. 자신이 개발한 사진 자동인화기가 일제와 대기업 제품을 물리치고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한때 서울 시내 3곳에서 사진 자동인화기 공장을 운영했고 직원도 150명이나 됐다. 1990년대까지 전국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45분 컬러’, ‘17분 컬러’ 등의 간판은 대부분 가게에 그의 인화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 사장은 “1974년 현대칼라 사진기술자로 입사한 이래 40년간 제조업에 투신했다”면서 “1990년대 이후 저가 중국산 제품의 공세와 디지털 사진기술의 발달로 미래를 고민하던 중 3D 프린터 기술을 만났다”고 회상했다.
재료를 한 층씩 쌓는 적층 방식의 3D 프린팅 기술은 사진을 찍어 내는 기술과 흡사하다. 빛을 이용해 재료를 조금씩 굳혀 제품을 완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5년경 고민 끝에 수중에 있는 100억 원을 미래 산업인 ‘3D 프린터’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공장 터와 인력을 줄였고 나중에는 골프회원권까지 팔아 기술 개발에 나섰다.
이 사장은 굳이 자신의 학력을 얘기하지 않는다. 전문 기술을 강단에서 배운 적은 없지만 사진과 3D 프린팅 기술을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최고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실제로 그는 1만 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는 3D 프린터 제조와 첨단 재료기술이 필요한 원료 공정 관련 기술을 사진 인화기를 개발하면서 알게 된 일본 도쿄대 박사들에게서 배운 뒤 이를 개선해 원천 특허를 확보했다.
이 사장은 제조업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내비쳤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의미를 주는 제조업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제조업을 포기한다는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