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레이더파를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특수재질로 제작된 미국 공군의 F-22(랩터·Raptor) 스텔스기는 레이더 화면에 작은 새나 벌레 크기로 나타난다. F-22가 현존 최강 전투기로 평가받는 주된 이유도 이런 스텔스 능력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앞다퉈 스텔스기를 도입하거나 개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차세대전투기로 F-35A 스텔스기를 선정한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떠 내년부터 스텔스기를 잡을 수 있는 레이더를 개발한다고 일본 NHK가 최근 보도했다. 스텔스 능력 면에서 ‘창과 방패’를 모두 갖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스텔스기가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전쟁 초기엔 은밀하게 적의 핵심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스텔스 성능이 요긴하지만 이후 다양한 임무를 위해선 무장과 기동성, 근접전투능력 등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스텔스기의 탐지추적 기술도 개발 중인 만큼 스텔스 성능은 차세대전투기가 갖춰야 할 여러 요건의 하나일 뿐 ‘요술방망이’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이르면 수년 안에 동북아 상공엔 스텔스 전투기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F-35A 도입에 맞서 중국은 J-20, J-31 두 종류의 스텔스기를 개발해 시험비행까지 끝냈다. 러시아도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T-50(PAK-FA)을 2016년부터 실전배치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은 조만간 기종 결정을 앞둔 한국의 차세대전투기(FX) 사업에 풀기 힘든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8조3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첨단 전투기 60대를 구매하는 이 사업은 이달 중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주관하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F-15SE(미국 보잉)의 채택 여부로 판가름 난다. 3개 후보 기종 가운데 F-15SE를 제외한 F-35A(미국 록히드마틴)와 유로파이터(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EADS)는 총사업비를 초과해 성능과 기술이전 등 종합평가에서 F-15SE를 따돌려도 관련 규정상 계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전략무기인 FX 기종이 성능보다 ‘최저가’로 결정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방위사업청은 난감한 표정이다. 현지 성능평가 등에서 3개 기종 모두 FX의 요구 성능을 충족한 만큼 ‘가장 저렴한 기종’을 고르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방위사업청은 반박한다. 일각의 주장대로 지금 와서 사업을 원점 재검토하면 몇 년 안으로 공군 전력의 큰 공백이 초래돼 다른 대안이 없다는 논리도 편다.
FX사업의 딜레마는 돈이 아닌 전략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생존과 직결되는 전략무기의 안보적 가치를 간과한 채 예산만 따지다 보니 FX사업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처지에 놓였다는 얘기다.
비단 FX사업뿐만이 아니다. ‘주판알만 튀겨선’ 앞으로 대한민국에 닥칠 안보적 위협과 도전을 헤쳐 갈 묘수를 찾을 수 없다. 북한의 핵위협과 역내 패권을 노리는 중국,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의 군비 증강에 어떻게 대처하고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것인지 냉철한 판단과 안보전략 수립이 먼저라고 본다. 돈은 그 다음 문제다. 예산타령만 해선 안보 백년대계(百年大計)는 요원하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