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정부 5년간 정책적 무관심… 시민사회의 척결의지도 퇴색부패수준 亞 선진17국중 8위… 지난 10년새 최악 성적표기업 경제활동 존중하면서도 부패방지운동 얼마든지 가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국민대 명예교수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해마다 11월경이면 독일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I)가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지난해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조사대상국 176개국 중 45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4개국 중 27위로 평가된 바 있다. 그리고 그 점수나 순위가 2008∼2010년을 정점으로 계속 하향 내지 정체의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남미의 칠레나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물론이고 이제는 아시아의 대만보다도 뒤처진 평가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19세기 말에 한국을 처음 여행했던 영국의 이저벨라 비숍 여사가 양반들의 부패한 모습을 보고 크게 개탄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부패 방지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고 믿고 있는데 왜 지금도 국제적으로는 이런 정도의 평가밖에 받지를 못하고 있는가.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2008년 2월부터 2013년 사이에 정부가 우리 사회의 반부패 문제에 대한 정책적 관심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평가한 CPI만 하더라도 2004년에 5.0(당시에는 10점 만점으로 평가)에 이른 이후 2008년에는 5.6까지 꾸준히 상승하였으나 그 후 2009년에는 5.5점, 2010년과 2011년에는 5.4점, 2012년 다시 5.5점 등으로 후퇴 또는 정체하였고, 순위도 2009년과 2010년의 39위에서 2011년 43위, 2012년 45위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행정연구원이 금년 초에 조사해 공개한 ‘정부 부문 부패 실태’에 관한 보도에 따르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가 1년 전보다 더 심각하다는 기업 관계자들과 자영업자들의 인식이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72.4%로 그전 정부 때보다도 제법 높게 나타난 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독립된 반부패정책기구를 국민권익위원회란 명칭으로 통합한 조치나 정권 말기에 몇몇 측근 비리가 국민 앞에 드러난 점, 경제인에 대한 사면조치, 내곡동 사저 용지 매입과 관련된 잡음 등도 우리 정부의 반부패 의지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사례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반부패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확산을 위한 시민적 의지나 노력도 과거에 비하여 퇴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 물론 2005년 3월 노무현 정부와 정치권, 재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한 ‘투명사회협약’ 체결과 같은 다소 전시성을 띤 행사가 수용(受容)되는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경제의 효율성과 주요 20개국(G20) 외교에 치중하는 정부 아래서 시민사회의 반부패 활동이 주목을 받을 만한 여지도 그만큼 줄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반부패 운동에 참여하던 시민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고령화하고 선거직 진출 등으로 그 층이 얇어진 일면도 없지 않겠지만, 경제와 일자리 창출이 중요시되는 사회 풍토 속에서 반부패 운동이 분배의 정의를 우선시하는 반기업적 세력 또는 집단과 가까운 것으로 오인된 측면도 분명 없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부패사범에 대한 법원의 선고 양형도 점차 무거워지고 있고, 새 정부 출범 이후 과거 남용 경향이 있던 사면권 행사도 국민 정서에 맞추어 자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개혁이나 특별감찰관제도 신중히 검토되고 있다고 하니 국민의 신뢰가 존중되는 바른 법치문화가 이제 좀 더 자리를 잡으면 한국의 CPI가 내년부터라도 좀 상향될 수 있을까 하고 그저 소박한 마음으로 기대해 볼 뿐이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국민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