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6개월… 여성고위직 얼마나 늘었나]<下> 유리천장을 깨는 여성들
[朴정부 6개월, 여성고위직 얼마나 늘었나] 유리천장을 깨는 여성들
김신숙 국방부 국제정책과장은 소속 부처에서 ‘일 잘하는 과장’으로 손꼽힌다. 국제정책과장은 미국과 동북아 국가를 제외한 유럽연합(EU), 동남아, 중남미 등 전 세계의 국가를 상대로 군사외교 업무를 총괄하는 요직. 지금까지 남성만 앉던 자리다.
올 2월 여성으로는 처음 발령이 나자 일부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게다가 그는 국방부에서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다. 2005년 산업자원부에서 국방부로 전입했다. 김 과장은 실력 하나로 분위기를 바꿨다.
국방부 홍보 관계자는 김 과장에 대해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과 협상 능력을 바탕으로 군사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가 자자하다”고 말했다.
○ 4급 여성 공무원이 5년 전보다 1.7배 늘어
정부 부처와 공기업에서 ‘고위직 예비군’인 4급 여성 서기관이 늘고 있다. 정부 조직에서 4급 공무원이 3급 공무원으로 승진하는 데 9, 10년 걸리는 걸 감안하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많은 여성 공무원이 고위 직급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4급 여성 서기관이 이명박 정부 당시에 비해 늘어났다는 사실이 동아일보 취재팀의 조사로 확인됐다. 2008년 8월 323명이던 여성 서기관은 올해 8월 현재 535명으로 증가했다. 정부 전체 서기관 10명 중 1명 이상(11.3%)이 여성이라는 말이다.
공기업에서도 여성의 3급 중간 간부직 진출이 활발하다.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의 김윤경 차장은 1월에 신설된 ‘시운전 교대근무 파트장’에 부임했다. 새로 만든 발전설비의 시운전과 점검을 책임지는 자리. 화력발전기가 고장 나거나 갑자기 정지하지 않도록 해야 하므로 매우 힘들고 책임이 무거운 직책으로 손꼽힌다. 매일 반복되는 교대근무와 높은 업무강도 때문에 지금까지 남성만 맡았다.
하지만 김 차장은 발전기 운전사라는 입사 목표를 놓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여직원 최초로 발전 운전원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10년에 걸친 노력을 통해 금녀의 벽을 넘어서 꿈을 이뤘다. 김 차장은 “입사 초만 해도 여성은 현장보다는 관리나 운영 같은 사무를 해야 한다는 편견이 많았다.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어서 발전 현장으로 오는 후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 장밋빛 전망은 금물… 넘어야 할 산 많아
이처럼 정부와 공기업에서 여성 중간 관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낙관 일변도의 전망은 절대 금물”이라는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 위주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여성 고위직의 증가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회의론도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여성 최초로 법제처장을 지낸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은 “(재임 당시) 여성 국장 한 명 만드는 것도 경력부족, 주변 시선 등의 문제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활성화되려면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사고방식 개선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본보 조사에 응한 이공계 공기업에서는 “여성을 (3급 이상) 높은 자리에 임명하고 싶어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전체 임직원이 8500명에 이르는 대형 공기업이다. 이 중에서 3급 여성 직원은 6명에 불과하다. 3급 전체 직원(666명) 중 0.9%에 그친다.
한수원 관계자는 “채용 과정에서 여성 비율을 일정하게 배정하는 등 여성을 우대하지만 원자력 분야를 전공한 여성이 아주 적어서 고위직 여성을 당장 늘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