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지음/572쪽·2만9000원/휴머니스트34가지 메뉴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
밥상 앞에 앉은 조선시대 남자를 담은 프랑스 엽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지금에 비하면 밥을 훨씬 많이 먹는 대식가들이었다. 사진 아래에 프랑스어로 ‘한국, 많이 드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백성현 명지전문대 교수 제공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먹을 것이 빠지지 않는다. 실상 이런 소소한 추억이 쌓이고 쌓여 역사가 된다. 잘살든 못살든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살고, 한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를 추적하면 그 사회가 거쳐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가장 유행한 음식점이 국밥집, 조선요리옥, 대폿집이었다. 국밥집은 최초의 근대적 외식업이었다. 밥과 국을 식사의 제일로 여긴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가난하거나 급하게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국밥은 간편하면서도 든든한 음식이었다. 개항 이후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요리점의 영향을 받아 고급음식점 조선요리옥이 생겨났다. 조선요리옥에서는 술과 안주, 간단한 식사를 팔면서 기생이 손님을 접대했고 주문과 손님 응대,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던 보이도 있었다.
산업화시기에 대폿집은 싼값에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고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하는 공간이었다. 1962년 12월 13일자 동아일보에 ‘골목마다 대포집-고달픔의 피난처인양’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서 당시 풍경을 엿볼 수 있다. “골목마다 즐비하게 늘어선 대포집 속은 초저녁부터 밀려든 손님들의 담배 연기, 술 냄새, 안주를 청하는 고함 소리로 숨 막힐 지경이다. … 대부분 ‘살라리·맨’들로 보이는 손님들은 그저 마시기 위해 마시는 양 연거푸 큰 술잔을 들이킨다.”
이 책에는 다양한 음식을 둘러싼 옛 풍경과 그 유래가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보신탕은 원래 개장이라고 불렸는데 조선 후기 삼복더위에 개장을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풍습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개는 애완동물이기도 해서 선비들 사이에서도 개고기 먹는 것을 두고 찬반양론이 벌어졌다. 근대 이후 개장은 미개한 문화로 취급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1940년대에 이름이 보신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개 대신 쇠고기를 넣어 개장처럼 만든 육개장이 대중화됐다.
1990년대는 식문화의 급변기였다. 아파트가 보편화되면서 아파트 상가를 중심으로 배달음식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세계화로 다국적 음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음식점에 프랜차이즈 영업 방식이 도입되면서 인테리어와 위생은 개선됐지만 맛의 균일화라는 아쉬움은 숙제로 남았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채널A 영상]시베리안 허스키도 먹는다?…‘애완견 보신탕’ 불편한 진실
▶ [채널A 영상]약 아니라 병 준다? 도심서 버젓이 개 불법도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