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간의 연애에도 정치는 작동한다. 나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강의실보다 연애에서 정치를 더 많이 배웠다. 연애야말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정치 게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애는 선거다. 선거가 그러하듯 생면부지의 이성(異性)을 만나 나를 알리고 지지를 획득해 선택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요즘 여심(女心)엔 독설남, 나쁜 남자가 대세다. TV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의 한 장면.
연애는 두 사람이 함께 사랑할 때 성립한다. 그러나 동시에, 동일한 크기로 사랑을 하는 건 아니다.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누군가 ‘더 사랑하는 쪽’이 있게 마련이고, 권력관계로 볼 때 이자가 약자다.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할 운명이다. 물론 반전 기회가 없진 않다. 반전에 성공한 약자야말로 진정한 연애정치 강자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연애 횟수는 4.3회이고 평균 연애 기간은 1년 5개월이다. 대학 시절부터 직장생활을 거쳐 결혼하기 전까지 대략 10년 동안 4~5명의 사람과 사귄다고 보면 될 듯하다.
이처럼 누구나 서너 차례 연애를 하지만 이들 모두와 결혼을 하는 건 아니다. 또 중매를 선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오히려 요즘은 연애 따로, 결혼 따로가 대세. 그런 점에서 연애를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와 ‘결혼과 무관한 연애’로 나눠야 한다.
결혼과 무관한 연애에서는 상대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 적다. 살짝 간을 보는 정도의 ‘저강도 정치’면 충분하다.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는 다르다. 장기간 동거와 더불어 자녀 출산과 양육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셈법이 복잡해지면서 판단을 내려야 할 지점이 늘어난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집안 문제’다. 혼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정말 고도의 정치술을 요한다. ‘고강도 정치’가 불가피하다. 이번 회에선 ‘결혼과 무관한 연애’를 중심으로 연인관계 내 정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애는 어느 일방 또는 쌍방이 호감을 느끼는 것으로 출발한다. 쌍방이 호감을 느낀다면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반면 상대방이 호감을 느끼지 못한 상태라면 이 게임,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김광석의 노래가 이런 상황에 해당한다.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한다.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걸…’이라며. 바보 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훗날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단 말을 걸어보는 것이 정답이다. 성격적으로 힘들다고? 핑계다.
맴돌면 반드시 때가 온다
당장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일단 주변을 더 맴돌면서 용기가 날 때를 기다리는 게 좋다. 이번에 포기하면 당신은 다음번에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말을 걸어봤더니 반응이 신통치 않다? 이때도 곧바로 포기하면 안 된다. 계속 주변을 맴돌면서 더 시도해봐야 한다. 그러면 언제 맴돌기를 포기해야 할까. 당신의 마음을 더 끄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다. 그때는 망설임 없이 갈아타야 한다. 미안할 필요도 없고, 부담도 없다.
정치권에는 이런 말도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불조심하자는 뜻이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새 정부의 실세로 등장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럴 때 주변 여기저기에선 ‘꺼진 불에 관심을 조금만 기울였더라면 나에게도 기회가 왔을 텐데’ 하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맺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역대 대통령도 따지고 보면 정치권 주변을 끝까지 맴돌다 결국 기회를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 포기하지 않고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대권의 꿈을 이룬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표적 사례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선거법 위반, 의원직 사퇴로 정치생명이 거의 끝났다가 절치부심해 서울시장직과 대통령직을 거머쥐었다.
정치학이 연애에 가르쳐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포기하지 말자, 맴돌자, 찾아온 기회를 잡자’이다. 멜로드라마의 스토리가 대체로 이런 패턴을 따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기의 연애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커플이 탄생하곤 한다. 아마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던 사이 그들 중 누군가는 상대방의 주변을 배회했을 것이고, 기회를 틈타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배회 중 기회 포착! 중요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접근 단계다. 호감을 가진 쪽에서 조심스럽게 또는 과감하게 ‘대시’를 하는 단계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의사도 분명해진다. 좋다고 하거나 거절을 하거나. 물론 한 번의 ‘대시’로 확인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호감의 수준이 애매하다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상황을 즐기려는 얄궂은 사람도 없지 않다.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 몰라요.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번 보여줘 봐!’ 이런 심보라 하겠다.
접근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몰아서 잡는 법’이다. 고기를 잡겠다고 물에 뛰어들어 무턱대고 몽둥이를 휘두르면 몸만 축난다. 멀찍이 그물을 쳐놓고 천천히 몰아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 특히 남성이 무작정 돌진했다가 퇴짜를 맞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할 일이다.
무엇으로 몰 것인가. 물론 헤어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이다. 그것으로 서서히 상대방을 옭아매야 한다. 그런데 그 매력을 나에게서는 도통 찾을 수 없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누구든 자기만의 특별한 매력 포인트를 갖고 있다. 원석(原石)을 세련되게 가꿈으로써 극적 반전을 도모한다면 당신은 연애정치 고수에 등극할 수 있다.
美權! 외모는 권력이다
매력. 참으로 매력적인 단어다. 복합적이면서도 고혹적인, 논리적 설명을 거부하는 도도함이 묻어나는. 그래서 본능 또는 감성에 가까운 행위로 해석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빠져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이라는 건 없다. 매력을 느끼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남보다 더 잘생겨서, 남보다 더 몸매가 좋아서, 남보다 더 부자라서, 남보다 더 학벌이 좋아서, 남보다 더 성격이 좋아서…. 당신이 과거에 좋아했던 대상들을 떠올려보면 답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조건 없이 사랑했다? 거짓말이다. 그저 한두 조건을 포기했다는 말이겠지.
매력을 이루는 요인 중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최고는 단연 외모다. 이것을 미력(美力) 또는 미권(美權)이라고 한다. 다음은 재력이다. 자본주의 사회다보니 재력은 미력을 자주 압도한다. 특히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재력의 영향력이 커진다.
다음은 학력이다. 요즘은 학력도 재력으로 확보 가능한 시대다. 그래서 더욱 더! 좋은 학벌은 관심을 끈다.
다음은 나이다. 연상남, 연하녀가 주류를 이루다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을 끄는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는데 요즘 연하는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성격도 매력을 이루는 주요 항목이다. 그런데 트렌드가 달라졌다. ‘나쁜 남자’ ‘나쁜 여자’를 더 좋아한다. 취미 참 고상해졌다. 특히 ‘결혼과 무관한 연애’에서 나쁜 남자와 나쁜 여자는 압도적 선호대상이다.
이 매력 상관관계 측정치를 염두에 두면서 <표2> ‘연애 양상’에서 당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도 표시해보기 바란다.
만약에 여러분이 <표2>의 1사분면(내가 열세, 내가 더 사랑)에 속한 경우로서 연애가 현재 진행 중이라면 여러분은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연애정치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상대의 의사에 의해 연애가 깨어질 가능성이 큰 순위는 1사분면(내가 열세, 내가 더 사랑), 2사분면(내가 우세, 내가 더 사랑), 3사분면(내가 열세, 상대가 더 사랑), 4사분면(내가 우세, 상대가 더 사랑) 순이다.
1사분면에 속한 경우로서 이미 결혼을 한 경우라면 여러분은 연애정치의 강자다. 연애 과정에서 1사분면에서 3사분면(내가 열세, 상대가 더 사랑)으로 이동한 경우라면 여러분은 연애정치 최강자라고 할 수 있다. 성형미인이 되거나, 가난한 고학생이 고시에 패스하거나,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매력 요인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1사분면에서 4사분면으로 이동하거나 2사분면에서 3사분면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평범한 사람도 성공하는 이유
접근 단계에선 내가 가진 매력 항목을 최대한 부각해, 인지도를 지지도로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 핵심 기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매력이 떨어진다고 주눅 들지 말라. 많은 사람은 ‘미력, 재력, 학력, 나이, 성격 등 매력 요인별로 고루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론은 무시하라. 이 이론은 ‘평범한 사람도 다 연애한다’는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둘째, 내가 가진 매력 요인을 최대한 부각해라. 왜? 그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셋째, 내가 가진 매력 요인으로 상대를 중독시켜라. 단, 가랑비에 옷 젖듯이. 넷째, 상대방이 자랑스러워하는 매력 요인을 늘 칭찬해줘라. 아무리 여러 번 칭찬해줘도 부작용은 없다. 다섯째, 상대방이 자신감을 잃었을 때 그것을 더 칭찬하라. 여섯째, 그 매력 때문만으로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가끔 강조하라. 일곱째, 여러분의 부족한 매력 요인을 개선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라. 게으른 돼지로 보이는 순간 당신은 제사상에 오른다.
식사 자리의 역학관계
식사, 선물, 이벤트 같은 고전적 방법은 연인에게 꾸준하게 잘 먹힌다.
경쟁자를 물리쳐야 한다는 점에서 연애와 선거는 닮은꼴이다. ‘내 애인에게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공허한 주장이다. 그 사람은 과거에 누군가를 마음에 품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품고 있을 수 있다. 그건 본인 외엔 모르는 일이다. 연예인 아무개 또는 이상형 아무개라는 형태로 포장된 그것. 여러분은 그 아무개와 경쟁 중이다.
상대방이 누군가를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분개하게 된다. 연애는 자주 자신 속의 분노와 싸우는 과정이 되어버리곤 한다. 경쟁자가 신경 쓰이면 자신의 매력 지수를 높이는 데 열중하는 게 좋다. 그런 상황을 스트레스로 생각하지 말고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쟁자가 없는 연애, 재미없다.
심화 단계에서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선물과 이벤트다. 무슨 무슨 ‘데이(day)’에 인상적인 선물이나 이벤트를 선사함으로써 마음을 전한다는 이 고전적인 방식은 꾸준하게 잘 먹힌다. 평상시 식사와 차를 함께 하는 일에 공을 들이는 것도 효과적이다. 얼마나 자주 함께 식사와 차를 하는지는 친밀도의 중요한 척도다. 많이 먹여야 관계가 부드러워진다. 그런 점에서 연애는 매수다.
선거 현장에서도 금품과 향응 제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은근하고도 뿌리치기 어려운 힘 때문이다. 일단 얻어먹고 나면 다른 사람을 찍을 때 망설여진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징벌적 벌금을 매기는 동시에 고발한 자에게 파격적인 포상을 하는 것이다. 연애에서도 오랫동안 밥을 함께 먹은 사람을 배신하기는 쉽지 않다. 식사 자리에서 웃고 떠들었던 추억의 강렬함,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현명한 강적은 선물이나 향응을 처음부터 거절한다. 일종의 본능적 방어행위인 셈이다. 일단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거나 선물을 받아들였다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한 번, 두 번 우연을 가장해 밥을 같이 먹고 선물을 주고받다 어느새 연인 사이가 된다.
연애와 선거운동에 차이점이 있다면 연애의 경우에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애는 이처럼 불법선거다. 그래서 더 짜릿한지 모르겠지만 불법선거, 연애를 할 때는 맘껏 저지르자. 물론 도가 지나치면 가난을 불러온다.
그래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방법도 알아둬야 한다. 물량 공세를 펼칠 자신이 없다면, 가치로 포장하길 권한다. 스토리가 담긴 무엇이, 스토리가 담긴 어디가 비용 대비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머리 품이라도 부지런히 팔라는 뜻이다. ‘더 연구하세요!’
국제정치학으로 본 ‘권태’
깨진 연애의 대부분은 권태를 극복하지 못해서다. 사실, 이별보다 더 힘든 것이 권태의 극복이다. 연애의 최대 난제라고 할 만하다. 그나마 결혼한 이후에는 권태기가 와도 결별을 막아줄 수 있는 완충장치가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관계이고 이혼이라는 번거롭고도 야멸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도 억제 요인이다. 그러나 연애는 다르다. 권태를 쉽게 이기지 못하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헤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권태를 극복할 것인가. 국제정치학 이론이 이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있다. 첫 번째 기술은 긴장 고조(raise of tension), 두 번째 기술은 국면 전환(change of pace), 세 번째 기술은 긴장 완화(detente)다.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킨 다음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극적인 국면 전환을 꾀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방식이다. 국제관계에서 외교적 분쟁을 해결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것, 연애에도 의외로 잘 듣는다.
심화 단계를 거치고 나면 연인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진다. 알 것 다 알고 단점까지 완전정복한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권태를 촉진한다. 달달했던 상대방의 매력 요인이 일상이 되면서 지루하기까지 한 상황, 쉽게 깨기 어렵다.
이럴 때는 할 수 없다. 상대방의 가장 못마땅한 그것을 의도적으로 ‘까야’ 한다. 느닷없는 춘계 대공세에 상대방이 당황할 것이다. 한 개그 프로그램의 명언, ‘선생님? 마이 당황하셨어요?’ 바로 그거다.
의도적으로 긴장 수위를 높이면 쌍방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집중도도 높아진다. 상대방이 반격에 나서면 수치는 더 높아진다. 긍정적 신호다. 단, 너무 나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나중에 수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적정선을 잠정적으로 정해두고 일을 시작하는 편을 권장한다.
긴장 고조 국면을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가. 너무 빨리 끝내서도, 너무 길게 끌어서도 안 된다. 안타깝지만 그 시간은 나도 모른다. 사안별로, 쌍방의 심리 상태를 고려해, 그때그때 스스로 판단을 내려 결정해야 한다. 출구 타이밍을 잘 잡는 건 사실 정치 고수에게도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다. 이건 뭐, ‘알아서 하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음, 국면 전환. 이것은 극적일 때 효과가 배가된다. 류현진의 빠른 직구 뒤 느린 변화구처럼 ‘들었다 놨다’ 해야 한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극적 반전. 화끈한 양보. 이를 통해 여러분은 권태를 극복할 변곡점에 이른다. 상대방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짜릿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잦으면 역효과가 난다.
마지막으로 긴장 완화. 쌍방이 평온한 상태로 접게 들게 하는 것이다. 쉬운 듯 보이지만 실은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특히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도록 처리를 잘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남성들이 이 부분에 아주 취약하다. 더 쓰다듬어줘야 할 때 ‘이제 됐지?’ 하는 식으로 손을 놓아버린다. 왜 그리 인색한지 모를 일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충분히 다독여줘야 고양이는 잠이 든다.
잘 이별하는 법
연애정치 강자는 권태라는 위기를 더 친근해지는 계기로 활용한다. 관계 성숙의 한 방법으로 일부러 위기를 고조시킨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사람이 적지 않을 텐데, 그래야 한다. ‘요물’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에스컬레이션(escalation·팽창)이냐, 디스컬레이션(descalation·위축)이냐?’ ‘긴장 완화 국면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특히 연애는 결혼보다 견고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에스컬레이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만 오래간다.
연애의 마지막은 이별 단계다. 이별까지 연애 과정으로 본다? 의아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과정이다. ‘잘’ 이별하는 것, 무엇보다 여러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이별은 끝이 아니다. 기회다. 새로운 모습으로 그 사람을 다시 만날 기회이자 더 나은 상대를 만날 기회다.
이별은, 속된 말로, ‘차인’ 경우와 ‘찬’ 경우로 구분된다. 이에 따른 이별 양상이 다르므로 당연히 대처 방법도 달라야 한다. 차였을 때 어땠는가. 차이면 일단 당황스럽다. 내가 덜 좋아했더라도 불쾌하다. ‘잡아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담담하게 “알았다”고 말하기 바란다. 그래야 상대방이 혼돈에 빠진다.
구원(舊怨) 남기지 말라
그다음이 중요한데, ‘진상’은 절대 금물이다. 스토킹에, 방화에, 자살 소동까지 벌이는 사람이 없지 않은데, 연애든 정치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일단 기다려보자, 마음속에서 하나, 둘, 셋을 셀 때까지. 잊을 만한가. 그러면 다른 상대를 찾으면 된다. 잊기 어려운가? 매달리는 것, 말려도 소용없겠지만, 그래도 말리고 싶다. 절대 안 돌아온다. 더욱이 다시 돌아와봐야 그때부턴 짐이 될 뿐이다. 평생 그 짐, 안고 살고 싶은가.
떠난 사람, 잡지 말고 나중에 다시 만나더라도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게 좋다. 과거에는 연애하다가 헤어질 때 설전 벌이고 정신적 낭비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엔 이혼한 부부도 친구로 지내는 시대다.
단, 합의 이별 과정은 거치기를 권한다. 이별 회동을 갖자고 제안하고, 왜 나를 계속 만날 수 없는지 차근차근 듣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 가혹한 시간이겠지만 아주 유용할 것이다. 다 듣고 나서 ‘혹시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연락하라’는 말 정도로 자리를 접는 게 좋다. 차인 사람의 야멸찬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매우 좋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자!’를 외쳐라. 버려야 얻는다.
이별을 주도할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냥 ‘나쁜 사람’으로 남을 각오로 매몰차게? 진짜 나쁜 사람은, 연애정치의 달인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자책’을 남기는 방식을 택한다. 잔인하다고?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정리하는 방법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연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왜 헤어져야 하는지 납득을 시켜야 한다. 이어 상대방이 저지른 실수를 언급하는 순서로 가는 것이다. 이때 결정적인 한 가지만 짚는 것이 좋다.
정치 세계에선 이합집산이 빈번하다. 새로 만나는 것만큼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헤어질 때 불필요한 구원(舊怨)을 남기지 않는 정치인이 오래간다. 이 원리는 연애정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