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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비리-권력 다툼 속 인간의 욕망 냉정하게 그려

입력 | 2013-09-09 03:00:00

‘추적자’ 이어 ‘황금의 제국’ 호평 박경수 작가의 드라마는…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의 손현주(최민재 역·왼쪽)와 고수(장태주 역). 박경수 작가는 이 드라마에서 그의 전작 ‘추적자’와 달리 선악의 이분법 구도에서 벗어난 중층의 인물상을 그려내고 있다. SBS TV 화면 촬영

박경수 작가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은 국내 시청자들에겐 낯선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1990년부터 약 20년 동안 대기업 성진그룹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여느 재벌 드라마와는 선을 긋는다. ‘식탁에서 밥 먹다가 백화점 주인을 바꾸고 수백억 원의 돈을 날리고도 아버지한테 꾸지람 한 번 들으면 끝나는’ 재벌가의 비리와 권력 다툼을 치밀하게 그리고 있지만 재벌을 미화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이 작품을 쓴 이는 박경수 작가(44). 그는 지난해 장편 미니시리즈 데뷔작인 SBS ‘추적자’로 높은 시청률과 평단의 호평을 거머쥐었다. 그래서인지 ‘황금의 제국’은 많은 면에서 ‘추적자’를 떠올리게 한다. ‘추적자’는 사고로 딸을 잃은 형사가 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며 권력에 대항하는 과정을 다뤘다. 손현주 류승수 장신영 박근형 등 겹치는 배우가 많기도 하지만 그 너머 권력관계를 보는 시각이 유사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사회 권력구조에 대해 개인적인 차원의 감상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의 분노를 다룬다”면서 “대상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본질을 파헤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밀도 있는 전개, 비유와 상징이 응축된 문학적인 대사도 여전하다. 지난해 ‘추적자’ 어록과 마찬가지로 ‘황금의 제국’ 어록도 인터넷에서 화제다. 재벌 회장은 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며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남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돼라”고 말한다. 가난한 수재 장태주(고수)는 정직하고 성실했던 아버지가 성진그룹의 용역깡패에 의해 평생의 피땀이 어린 가게와 목숨까지 잃는 것을 보며 “돈 벌고 싶으면 땀을 흘리면 안 되며 남이 흘리는 땀을 훔쳐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얘기한다. 그는 “나라가 흥한다고 우리 인생 흥하는 거 아니듯 나라가 망한다고 우리 인생 망하는 것 아니다”라며 1997년 외환위기를 ‘기회’로 정의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거듭되는 것도 공통점이다. 두 작품에서 박 작가와 함께 작업한 조남국 SBS PD는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 소재의 한계 때문에라도 주변적인 이야기나 편안한 에피소드를 섞기 마련인데 (박 작가는) 중심 이야기와 캐릭터에 몰두하다 보니 이야기와 캐릭터가 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뚜렷하게 강자와 약자의 대결구도를 보여줬던 ‘추적자’에 비해 ‘황금의 제국’은 선악과 애증의 관계가 고착돼 있지 않다. 극이 진행될수록 선악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진다. ‘황금의 제국’의 장태주는 ‘추적자’의 주인공 백홍석(손현주)처럼 선량하지 않다. 그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이후 부동산투기로 돈을 모아 성진그룹을 빼앗는 과정에서 비정한 괴물이 되어 간다. 복수를 위해 자신이 저지른 살인죄를 사랑하는 여자(장신영)에게 덮어씌운다.

이 때문에 ‘황금의 제국’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한국 드라마에서 드문 신선한 시도”(정덕현)라는 칭찬이 있는가 하면 “자본주의 속 인간의 욕망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낯선 방식으로 다룬 탓에 대중적 호소력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황금의 제국’은 종영 2주를 남기고 있는 현재까지 10% 안팎의 시청률에 머물러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핵심 장면이 재벌가의 식사 대화라고 할 만큼 지나치게 연극적인 데다 대사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기존 드라마 문법에 익숙한 시청자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