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도통신 “日우편저축은행서 보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저금통장 수만 개가 일본 유초(郵貯·우편저축)은행 후쿠오카(福岡) 시 저금사무센터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교도통신이 7일 보도했다. 통장이 공개되면 강제징용자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한일 간 배상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 징용자를 고용했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한국 법원에서 징용 피해자들이 제소한 일본 기업은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옛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이다.
교도통신은 이 통장들이 “당사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보관되고 있다”며 “대부분이 전시 중 미지급 임금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모리야 요시히코(守屋敬彦) 전 사세보 고등전문학교 교수(근현대사)는 “당시 많은 기업이 조선인 노동자가 달아나는 것을 막으려고 임금 전액을 주지 않고 일정액을 우체국 등에 강제로 저축시켰다”며 “저금의 대부분은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았고 관련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유초은행 홍보부는 통신에 “판독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아직 정리 중”이라고 밝혔지만 통장의 정확한 수량이나 잔액 합계, 정리 완료 시점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강제징용자 소송을 맡고 있는 최봉태 변호사는 “강제징용자 피해보상에 대한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 판결 취지도 개인청구권은 살아있으나 재판으로 행사할 수 없으니 자발적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인권 차원에서 통장 기록을 공개해 피해자 권리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통장 기록이 공개되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정당성과 효력에 대한 논란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국 정부는 정확한 개인저금 액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일본의 경제협력 자금에 개인 저축도 포함된 것으로 처리했다.
교도통신은 앞서 2010년 8월 도쿄(東京) 소재 ‘우편저금·간이생명보험관리기구’에 조선 대만 남양군도 등 일본이 강점한 지역에서 민간인이 가입한 ‘외지(外地·식민지)우편저금’ 계좌 약 1800만 개(약 22억 엔)가 보관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22억 엔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4조4000억 엔(약 49조 원)에 이른다. 이는 강제징용자 피해보상 소송을 진행하는 일본 변호사들이 적용하는 기준으로, 현재 가치는 환산 방식에 따라 편차가 크다.
교도통신은 또 옛 일본군과 군무원이 맡긴 ‘군사우편저금’ 계좌도 약 70만 개(약 21억 엔)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 우편저금 계좌에 맡겨진 돈은 일본인이 요구하면 반환하고 있으나 한국인에게는 반환하지 않고 있다.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것이다.
패전 후 연합군총사령부(GHQ)의 지시에 따라 일본 기업은 1946년 8월 조선인에게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은행에 공탁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3월 2차 보상에 나선 한국 정부에 증빙 자료로 27만 명, 2억7800만 엔어치의 공탁금 사본을 전달했다. 사본에는 기업별로 징용자의 이름, 본적지, 입사와 해고 연월일, 공탁 이유와 공탁금을 자세히 적은 자료도 있었지만 이름과 공탁금액 정도만 허술하게 적어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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