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남 구례의 200년 된 고택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깜깜하고 적막한 밤. 도시에서 온 여행자의 고독을 달래준 것은 지리산 자락의 향긋한 공기와 환한 달빛, 그리고 귀뚜라미 울음소리였다. 또르르 또르르, 구성지게 울어대는 녀석들 덕분에 스르르 단잠에 빠졌다. 귀뚜라미 소리가 오죽 좋았으면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매년 가을이 되면 궁중의 비첩들이 조그만 금롱 속에 귀뚜라미를 잡아넣어 베갯머리에 두고 밤마다 그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귀뚜라미는 예로부터 고독한 사람의 벗이었다. 귀뚜라미 소리에 그리움과 외로움을 담아 쓴 시가 많다. “귀또리 저 귀또리 어여쁘다 저 귀또리…/ 저 혼자 울어예어 사창(紗窓)에 여윈 잠을 살뜨리도 깨우는구나/ 두어라 제 비록 미물이나 무인동방(無人洞房)에/ 내 뜻 알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여인으로 추정되는 작자의 심경이 절절하다. 조선 중기 문인 이응희는 “귀뚜라미가 앞뜰에서 울어…/ 어찌하여 이런 소리를 내어/ 이렇게 만감이 교차하게 하는가”라고 노래했다.
신성미 문화부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