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의 주연만 기다린 철없던 생각을 버리니 비로소 ‘배우 이정재’가 보이기 시작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 ‘도둑들’ ‘신세계’ 이어 12일 개봉 ‘관상’ 주연 이정재
최근 1년 간 화제 작품마다 주연
이젠 나를 더 많이 보이는게 중요해요
수양대군, 영화 시작 한시간후에 등장
비중보다 ‘비릿한 악역’캐릭터에 끌려
연륜의 깨달음, 허송세월하지 않아요
“글쎄요.”
배우 이정재(40)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최근 1년 동안 영화계 안팎에서 화제가 된 작품마다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고 하자 나온 반응이다. 그 영화들은 ‘도둑들’, ‘신세계’ 그리고 12일 개봉을 앞둔 ‘관상’이다.
“예전엔 한국영화가 10편 나오면 그중 한 편 정도 잘 됐지만 지금은 거의 다 흥행하지 않느냐”고 되묻는 이정재는 “시나리오 고른답시고 보낸 4∼5년의 허송세월에 다신 그러지 말자는 각오? 다짐? 그런 게 있었다”고 했다.
이정재가 보낸 그 다짐의 시간은 ‘도둑들’로 새로운 출발을 맞았다. “주·조연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는 그는 1298만 관객으로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오른 ‘도둑들’ 이후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좋은 영화의 주연만 기다리는 건 내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너무 행운만 바란 건 아닌가…. 철없던 시절을 지나고 보니 이젠 나를 더 보여주는 게 중요한 걸 알았다. 아마도 연륜?(웃음) 그런 영향도 있겠지.”
“하루는 아버지께 여쭸다. 수양대군 역을 맡으면 어떻겠냐고. 대뜸 ‘너랑 수양은 안 맞지’였다. 하하! 최측근인 부모님이 보기에도 그런데,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욕심은 났지만 선뜻 선택을 못 하던 차에 한재림 감독을 만났다. “더 남성미가 있는 배우를 찾아보라”고 역 제안도 했다. 하지만 한 감독은 “수양 역의 배우에겐 왕의 후손 느낌이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결국 귀족 외모란 말에 넘어간 것이냐’고 묻자 이정재는 크게 웃었다.
이정재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매일 오전엔 반드시 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오랜 습관.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붓는 탓에 영화 촬영 몇 개월 동안은 입에 대지 않는다. “숙취 회복에 3∼4일이 걸리는데 운동으로 땀을 엄청나게 빼야 회복이 되는 체질” 탓이다.
엄격한 자기관리로 나온 그의 몸은 최근 다시 화제를 모았다. 한 연예정보 프로그램이 1993년 방송한 드라마 ‘공룡선생’의 자료화면을 통해 이정재의 상의를 그대로 보여줬다. 마침 이를 봤다는 그는 “아! 어쩜 가슴이 그렇게 컸을까” 놀라워하며 “‘모래시계’ 때는 고현정 선배보다 나이 들어 보이려고 애썼는데 이젠 젊게 보이고 싶다”며 연기자로 살아온 20년의 단상을 밝혔다.
자신의 다음 출연작을 끝내 숨기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이정재는 ‘쿨’했다. 각 영화의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신세계’의 앞선 이야기가 될 후속편에는 황정민, 최민식 등 주연배우 모두 출연을 약속한 상황. 이정재는 “2편에선 액션이 더 부각된다”며 “현재 감독이 시나리오를 다시 쓰고 있다”고 밝혔다. ‘무뢰한’은 내년에 출연할 예정. 그에 앞서 ‘빅매치’ 출연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허송세월하지 말자고 다짐했다”는 이정재의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