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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유재학 “장신 귀화선수, 한국농구에 필요하다”

입력 | 2013-09-10 07:00:00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미국 LA 전지훈련 도중 숙소에서 농구계의 뜨거운 이슈인 귀화선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LA|이경호 기자


■ 모비스 유재학 감독

亞 선수권에 순수귀화선수만 7명 출전
앞으로 다시 중국 이긴다는 보장은 없어
리바운드 따낼 장신, 韓 농구 성공의 키


#2014년 미국 출신 210cm의 장신 농구선수가 한국에 귀화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면, 당신은 정서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검은 피부 또는 푸른 눈동자의 국가대표선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만약 부정적 시각이 더 크다면 이어지는 유재학(50) 모비스 감독과의 미국 LA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읽어주십시오. 생각이 바뀔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을 꺾고 16년 만에 남자농구월드컵 진출을 이끈 명장이 왜 거꾸로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질문을 했는지, 아주 조금은 공감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잃어버린 10년. 한국남자농구의 지난 10년은 어두운 기억이다. 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 문경은(현 SK 감독), 이상민(현 삼성 코치) 등이 주축으로 활약하며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순간을 정점으로 국제무대, 심지어는 아시아무대에서조차 희미한 존재로 내려앉았다. 농구대잔치 스타 출신의 프로 1세대가 하나둘씩 빛을 잃어가면서 국내리그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그러나 2013년 마침내 기다렸던 큰 기회를 잡았다. 유재학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7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내년 스페인에서 열리는 남자농구월드컵(종전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무려 16년 만의 월드컵 진출이다. 특히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아시아 정상으로 군림하던 중국을 63-59로 제압했다. 유 감독은 대표팀에서 모비스만의 고유한 전술 노출이라는 부담까지 감수한 채 견고한 수비조직망과 약속된 패턴 공격 등 ‘만 가지 수를 가진 감독’이라는 명성 그대로 현란한 작전을 구사했다. 그 결과 탄탄한 조직력과 끈질긴 수비력, 그리고 알토란같은 외곽슛이 어우러져 값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농구에 다시 장밋빛 시간이 찾아올 것인가. 모비스의 LA전지훈련장에서 만난 유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스 출신 감독(파나요티스 야나키스)이 우리를 상대로 외곽 플레이 위주로 승부했다. 신장차를 극대화하지 않은 (중국의) 전술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아시아농구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앞으로 다시 중국을 이기고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아시아농구의 발전이 빠르다.”

예상과 달리 매우 어두운 전망이다. 유 감독이 가장 걱정한 부분은 아시아 각국의 귀화선수다. 이번 아시아선수권에도 혼혈이 아닌 순수 귀화선수만 7명이 출전했다. 대부분 한국농구의 가장 큰 약점을 파고들 수 있는 장신 선수들이었다. 카타르의 자빈 헤이즈는 미국프로농구(NBA) 출신이었다. 장신 센터를 보유한 중국과 이란을 제외하면, 이처럼 아시아 각국은 앞 다퉈 귀화선수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에도 귀화선수는 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다. 이번 대표팀에서 활약한 이승준(동부)은 혼혈귀화선수다. 어머니가 태어난 한국은 그에게 분명 조국이다. 그러나 이승준과 달리 이번 아시아선수권에 참가한 각국에서 1명씩 출전한 귀화선수 대부분은 부모의 국적과 전혀 상관없는 나라의 국적으로 뛰었다.

유 감독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도 귀화선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른 나라들이 모두 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면) 더 뒤쳐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판단은 농구계, 각 팀 감독, 단장, 협회와 연맹, 언론 등의 몫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팬 투표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누가 대표팀 감독을 맡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농구월드컵이 열리고 아시안게임이 연이어 개최되는 내년은 한국농구에 소중한 기회다.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유 감독은 평소 양동근, 함지훈 등 모비스 소속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너희들의 농구 창의성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한다. 모비스 선수들은 유 감독이 정밀하게 설계한 조직의 테두리 안에서 각각의 장점을 집중적으로 발휘한다. 슈팅 능력이 10점 만점에 9점인 선수는 슛을 집중적으로 던져야지 5점 정도인 돌파는 최대한 자제토록 하는 것이 모비스 농구의 한 단면이다. 모두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유 감독은 “대표팀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지만 똑같이 상대도 막강하기 때문에 소속팀에서처럼 개인의 단점이 드러나는 부분은 각자 최소화하고 장점만을 모아 한 팀에 녹아들게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분업, 강력한 수비, 정확한 슈팅 등 한국농구의 강점을 모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상대 장신 선수를 묶고 리바운드를 따내면서 골밑을 든든하게 지킬 센터가 필요하다. “우리가 필요한 귀화선수의 우선조건은 실력(기술)이 아니라 신장이다”는 유 감독의 말에 어쩌면 모든 것이 함축돼 있는지도 모른다.

LA|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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