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미국 LA 전지훈련 도중 숙소에서 농구계의 뜨거운 이슈인 귀화선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LA|이경호 기자
■ 모비스 유재학 감독
亞 선수권에 순수귀화선수만 7명 출전
앞으로 다시 중국 이긴다는 보장은 없어
리바운드 따낼 장신, 韓 농구 성공의 키
#2014년 미국 출신 210cm의 장신 농구선수가 한국에 귀화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면, 당신은 정서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검은 피부 또는 푸른 눈동자의 국가대표선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만약 부정적 시각이 더 크다면 이어지는 유재학(50) 모비스 감독과의 미국 LA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읽어주십시오. 생각이 바뀔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을 꺾고 16년 만에 남자농구월드컵 진출을 이끈 명장이 왜 거꾸로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질문을 했는지, 아주 조금은 공감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2013년 마침내 기다렸던 큰 기회를 잡았다. 유재학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7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내년 스페인에서 열리는 남자농구월드컵(종전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무려 16년 만의 월드컵 진출이다. 특히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아시아 정상으로 군림하던 중국을 63-59로 제압했다. 유 감독은 대표팀에서 모비스만의 고유한 전술 노출이라는 부담까지 감수한 채 견고한 수비조직망과 약속된 패턴 공격 등 ‘만 가지 수를 가진 감독’이라는 명성 그대로 현란한 작전을 구사했다. 그 결과 탄탄한 조직력과 끈질긴 수비력, 그리고 알토란같은 외곽슛이 어우러져 값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농구에 다시 장밋빛 시간이 찾아올 것인가. 모비스의 LA전지훈련장에서 만난 유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스 출신 감독(파나요티스 야나키스)이 우리를 상대로 외곽 플레이 위주로 승부했다. 신장차를 극대화하지 않은 (중국의) 전술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아시아농구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앞으로 다시 중국을 이기고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아시아농구의 발전이 빠르다.”
예상과 달리 매우 어두운 전망이다. 유 감독이 가장 걱정한 부분은 아시아 각국의 귀화선수다. 이번 아시아선수권에도 혼혈이 아닌 순수 귀화선수만 7명이 출전했다. 대부분 한국농구의 가장 큰 약점을 파고들 수 있는 장신 선수들이었다. 카타르의 자빈 헤이즈는 미국프로농구(NBA) 출신이었다. 장신 센터를 보유한 중국과 이란을 제외하면, 이처럼 아시아 각국은 앞 다퉈 귀화선수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유 감독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도 귀화선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른 나라들이 모두 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면) 더 뒤쳐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판단은 농구계, 각 팀 감독, 단장, 협회와 연맹, 언론 등의 몫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팬 투표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누가 대표팀 감독을 맡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농구월드컵이 열리고 아시안게임이 연이어 개최되는 내년은 한국농구에 소중한 기회다.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유 감독은 평소 양동근, 함지훈 등 모비스 소속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너희들의 농구 창의성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한다. 모비스 선수들은 유 감독이 정밀하게 설계한 조직의 테두리 안에서 각각의 장점을 집중적으로 발휘한다. 슈팅 능력이 10점 만점에 9점인 선수는 슛을 집중적으로 던져야지 5점 정도인 돌파는 최대한 자제토록 하는 것이 모비스 농구의 한 단면이다. 모두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유 감독은 “대표팀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지만 똑같이 상대도 막강하기 때문에 소속팀에서처럼 개인의 단점이 드러나는 부분은 각자 최소화하고 장점만을 모아 한 팀에 녹아들게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분업, 강력한 수비, 정확한 슈팅 등 한국농구의 강점을 모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상대 장신 선수를 묶고 리바운드를 따내면서 골밑을 든든하게 지킬 센터가 필요하다. “우리가 필요한 귀화선수의 우선조건은 실력(기술)이 아니라 신장이다”는 유 감독의 말에 어쩌면 모든 것이 함축돼 있는지도 모른다.
LA|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