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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문제가 아니다… 무상보육정책 처음부터 다시 짜라

입력 | 2013-09-10 03:00:00

[무상보육 어떻게 풀 것인가] <상>




《 전 계층을 대상으로 한 전면 무상보육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7개월째로 접어듭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를 상대로 재원이 없다며 아우성입니다. 서울시가 대표적입니다. 대부분의 보육전문가는 “복지는 중요하지만 전면 무상보육은 정치권의 표심을 위한 급조된 정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서울시 반발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보육정책이 갈 길을 고민하는 내용의 글을 상, 중, 하로 나눠 싣습니다. <오피니언팀> 》

고선주 전 한국건강가정진흥원장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재원 다툼으로 이슈가 된 무상보육의 핵심이 ‘돈’으로 비치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물론 무상보육은 돈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와 사회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짊어질 것인가 하는 철학과 사회적 합의에 관한 문제다.

결국 사람이 자원인 현대사회에서 사람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것이어서 모든 선진국이 자녀양육 지원에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최근의 사회 환경은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출산과 양육 자체가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국가의 정책 개입을 필요로 한다.

덧붙여 보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한 데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와 관련된 심각한 저출산이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70%를 넘는 대학진학률을 보이는 여성 인력은 부족한 생산인구를 가장 빠르게 충원할 수 있는 훌륭한 인적자원이다. 따라서 국가 경쟁력을 위해 이들이 아이 걱정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자녀양육 지원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돈’ 이전에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으로 이는 여성의 몫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동등한 책임과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남녀가 함께 책임을 진다는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양육 정책을 부모의 일-가정 양립을 전제로 한다면 정책 순서는 명확해진다. 첫째, 누가 돌볼 것인가? 둘째, 어떻게 돌볼 것인가? 셋째, 언제까지 돌볼 것인가이다. 이 세 가지 측면에서 국가는 소득, 장애, 부모의 있고 없음, 인종 등 개별 가정환경에 따라 아이가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녀양육 지원 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논쟁 중인 보육비용 부담 문제는 결국 소득에 따른 차별을 없애자는 면에서 정책수단 중 하위 요인에 불과하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자녀를 양육할 것인가의 문제다. 직장을 가진 부모가 교대로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돈보다 양육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이다. 그러니 돈도 돈이지만 직장과 가정을 교대로 선택할 수 있게 허용하는 조직문화의 변화가 시급하다.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어린이집의 돌봄 서비스를 다양화할 것인가 혹은 개인 돌봄으로 대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과정에서 조부모 양육도 가능하며 국가가 제공하는 신뢰할 수 있는 대리 양육자도 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다양한 선택 사이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현재 우리 보육정책은 보육비 지원과 양육수당은 보편 복지를 지향하고 아이 돌봄 서비스 등 개인 돌봄 지원은 저소득층 중심의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어 선택 사이의 차별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자녀양육을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부모가 원하는 자녀양육 서비스 지원은 단순한 보육비용 지원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과 선택 사이의 차별 지원 철폐, 아울러 가장 중요한 ‘서비스 품질’, 즉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에 대한 보장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민간 어린이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공공성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보육의 품질은 결국 제공하는 전달자의 질에 따라 좌우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돈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보육교사와 이들의 자질 개선을 위해 제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마지막으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언제까지 돌볼 것인가’ 문제이다. 지금 보육 지원은 주로 미취학 아동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많은 취업 여성들이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그동안 쌓아올린 직업 경력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정책 당국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기왕 시작한 일, 단순한 비용의 문제를 넘어 부분과 전체를 함께 통찰하는 접근을 통해 실질적이며 바람직한 해법을 찾았으면 한다. 비용의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일 것이다. 재정 문제라는 일면의 문제로 인해 자녀양육 지원이라는 큰일에 대한 고민을 피하게 만드는 현상이 생기지 않기 바란다.

고선주 전 한국건강가정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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