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이라 하면 아첨과 밀모, 경계 흐린 음성과 수사를 무기 삼아 왕의 눈과 귀를 막는 무리와 포개져 있지만, 이는 지독한 오해입니다. 그들은 다만 양근과 음낭을 내주고 부엉이의 눈과 뱀의 혀를 얻었을 뿐입니다.”
5일 밤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고대 그리스 미노타우로스 전설을 모티브로 한 연극 ‘천 개의 눈’이 막을 올렸다. 권력의 추악한 허상이 어떤 모습으로 대물림되는지 진지한 언어로 추적한 작품이다.
“글로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본”이라던 극장 관계자의 염려와 달리, 환관 미사(정선철)는 적절한 속도와 또렷한 발음으로 관객의 귀를 쓸어 담고 있었다.
“공안 당국은 향후 검찰과 국정원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습니다….”
TV 8시 뉴스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성 관객이 민망한 듯 웃으며 고개를 숙인 채 부랴부랴 휴대전화를 조작하고 있었다.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을 하다가 이어폰 꼭지가 빠진 듯했다. ‘웃긴 왜 웃어.’ 시선을 다시 무대로 돌렸다. 배우들의 얼굴에는 태연해 보이려 애쓰는 듯한 경직의 기색이 역력했다. 집중력은 분산됐고, 공연의 기세는 흐름을 잃었다.
연극은 영화처럼 관람하는 상품이 아니다. 관객이 참여해 완성하는 미완의 대상이다. 좌석 티켓은 연극을 구성하는 3가지 기본 요소 중 하나로 참여하겠다는 서약서다. 갈채하거나 야유를 보내거나, 눈앞의 공연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자유다. 하지만 휴대전화 전원을 끄지 않은 채 문자를 보내고 앉은 이는 관객이 아니라 방해물일 뿐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 마지막 장면. 텅 빈 극장에 혼자 앉은 주인공 토토가 행복한 얼굴로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를 관람한다. 텅 빈 객석에 혼자 앉아 연극을 본다면 어떨까. 역할의 무게가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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