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재준 국정원장 “비겁했다” 발언 이후
“국군포로의 생존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비겁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국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9일 탈북 국군포로들을 만나 이렇게 고백하고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정부의 관련 정책이 어떻게 변화될지 주목받고 있다. 남 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이제야 대한민국이 진정한 국가답게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독자와 누리꾼들의 격려가 쏟아졌다.
▶본보 10일자 A2면 [단독] 남재준 “국군포로 생존 알고도 행동 못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10일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남 원장의 의지가 대단히 확고하다”며 “앞으로 정책적 측면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참전 전사자들의 유해를 끝까지 찾아내 예우하는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9월 25일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북한과 합의했을 때 생사 확인 요청 대상 규모를 기존 200명에서 250명으로 늘려 잡았다. 이는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50명 가까이 포함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1∼18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생사 확인 요청을 받으면 대상자 25명 중 1명꼴(약 4%)의 회신율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망한 국군포로 아버지의 유해를 북한에서 중국으로 반출한 뒤 “한국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한 탈북자 딸 손모 씨의 사례에 대해서도 지원 여부를 다각도로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자(DNA) 감식 같은 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이 유해를 국군포로로 인정해 예우할 수 있느냐가 1차 관건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한국으로 송환된 12구의 유해에 대해 직접 서울공항에 나가 거수경례로 맞이하며 예우를 갖춘 전례가 있지만 이들 유해는 미군의 유해 발굴 과정에서 나온 한국인 전사자들이었다. 당시 한미 군사 당국의 DNA 감식 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국군포로신고센터의 김현 센터장은 “군번 인식표와 가족의 증언, 유해 송환 과정의 전후 사정 등을 토대로 확인할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생존한 국군포로 및 사망자 유해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와 가족이 직접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에는 500여 명의 국군포로 생존자가 있다는 것이 국방부의 추산이다. 평균 87세의 고령이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그동안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2차례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공식 언급을 회피했다. 정부는 지금도 ‘전쟁 시기와 그 후에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공식으로 북한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적극적인 해결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서 국군포로 송환을 요청했지만 북한이 이들의 존재를 강하게 부인하면서 이후 진전을 보지 못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이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있어 보이는 만큼 국군포로의 유해 송환 등을 국군포로 정책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은·김철중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