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12년 전 오늘(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5분(뉴욕 시간)부터 10시 28분까지 미국 네 곳(뉴욕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에서 거의 동시에 벌어진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9·11 공중테러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제로니모’라는 암호명으로 끈질기게 추적했던 오사마 빈라덴은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에서 미군에 사살됐다. 납치 여객기 충돌 테러로 붕괴됐던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쌍둥이빌딩) 자리엔 새 건물이 건설 중이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9·11기념관도 개관했다.
새 빌딩 건축 전까지 건물 붕괴 현장은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 불렸다. 추모객이 줄을 잇던 9·11테러의 상징적 장소였다. 그라운드 제로란 ‘아무것도 없는 땅’이다. 이 단어가 알려진 건 9·11테러를 통해서다. 하지만 실제는 1945년부터 있었다. 그 기원은 태평양전쟁 중 일본을 굴복시키려 개발한 필살기 원자폭탄. 당시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암호로 핵폭탄 개발을 극비리에 추진했다. 그리고 투하에 앞서 뉴멕시코 주 사막에서 폭파 실험을 했다. 그때 실험용 폭탄이 설치된 지점을 칭하는 암호가 그라운드 제로였다.
그라운드 제로가 단순한 지명이나 폭격 지점에 그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죄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숨진 수많은 선량한 시민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다함께 노력하자는 살아남은 자의 다짐이자 약속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시마병원이야말로 진정한 그라운드 제로다. 원폭에서 살아남은 환자를 위해 평생 의술을 펼친 병원장 시마 가오루 박사의 평화와 사랑의 정신을 통해서다.
그의 집안은 18세기 이래 대대로 의약업에 종사해 왔다. 의대 졸업 후 외과의사가 된 시마 박사가 유럽과 미국 유학 후 히로시마에 개업한 건 1933년. 그 병원은 저렴하면서도 수준 높은 미국의 의료 서비스 방식을 도입해 미국식으로 운영됐다. 그런 그인 만큼 전쟁에 대한 생각도 남달라 태평양전쟁에 반대했다. 그 바람에 그는 비밀경찰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하지만 전쟁은 벌어졌고 첫 원폭은 그의 병원을 향해 떨어졌다. 다행히 자신은 목숨을 건졌지만 환자와 직원 80명은 몰살됐다. 그가 폐허에 병원을 재건한 건 3년 후. 그는 피폭의 참화 속에서도 평화에 헌신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치료했다. 그 뜻은 후대에 전달돼 그의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됐다. 현재는 그 아들의 아들, 시마 박사의 손자가 운영 중이다. 그 역시도 히로시마 적십자병원, 피폭자치료병원과의 협진 등으로 그 정신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작금 일본 국민의 행보는 어떤가. 원폭 투하 직후 항복한 패전일(8월 15일)만 되면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줄지어 추모―물론 모두가 그러는 건 아니지만―한다.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곳인가. 국민에게 원폭을 안긴 전범을 신격화한 곳이다. 그런 곳을 패전일에 찾아 추모함은 자신이 원폭의 피해자인 듯 보이게 하려는 행동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원폭 투하의 ‘그라운드 제로’로 비치게 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역사는 사실을 거짓말로 둔갑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프랑스 시인 장 콕토(1889∼1963)는 지적했다. 이대로 가다간 야스쿠니가 먼 훗날 태평양 전쟁의 그라운드 제로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