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섭(1955∼)
시작은 모른 채
여기까지 달려온 길
소매 끝 꽉 붙잡았다
숨죽이며 벼랑 떠받는 바람
시간이 잠시 숨쉬기를 멈춘다
더 이상 터질 곳 없는
꽃의 절정인 듯
절체절명인 듯
빌 공!
사이 간!
목까지 올라온 숨
놓치지 않고 머금고 있다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만들고 있는 듯이
깜짝 순!
틈 간!
아, 살 것 같다! 이렇게 보송보송하게 앉아서 인간답게 호흡할 수 있은 지 열흘이 안 된다. 여름의 지옥 같은 터널을 허덕허덕 기어서 지나왔다. 꿈만 같다. 땀도 안 나고 춥지도 않고, 황송할 정도로 쾌적한 날씨다. 지금 이 상태, 이 순간이 ‘꽃의 절정’인 것 같다. 일 년 365일 중 가장 좋은 때! 이제 곧, 난방은 어떻게 하나 걱정하겠지. 그렇게나 인생의 좋은 날은 짧은 거다. 시 ‘물방울’이 진득하게 보여주는 바, 일생이 순간인 물방울처럼!
‘물방울’은 다의적으로 읽힌다. 땀, 이슬, 눈물, 그리고 정액으로도 읽힌다. ‘숨죽이다’ ‘벼랑을 떠받다’ ‘시간이 숨쉬기를 멈춘다’ ‘더 이상 터질 곳 없는’ ‘절정’ ‘절체절명’ ‘목까지 올라온 숨/놓치지 않고 머금고’ 등의 표현들이 어떤 유열(愉悅·희열)의 극치를 향해 숨 가쁘게 치닫는 것 같지 않은가? 물방울, 너무나도 짧은 완벽한 순간!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