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에 쓰이는 부품의 납품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송모 부장은 사과상자에 담긴 빳빳한 5만 원 현금다발 수억 원을 집에 감춰 놓았다가 발각됐다. 원전용 비상 디젤발전기와 변압기의 납품계약을 해주는 대가로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은 뇌물 17억 원의 일부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수사단이 어제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는 송 부장뿐 아니라 납품업체-검증업체-승인기관(한국전력기술)-운영기관(한수원)-정치권의 부패구조가 얼마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은 납품 청탁뿐 아니라 인사 청탁에 뇌물까지 받고, 이명박 정부에서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는 “잘 봐 달라”며 700만 원을 바쳤다. 일선 직원부터 정부 실세까지 이렇게 썩었는데도 원전이 그런대로 운영됐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원전비리수사단은 “47개 부품의 위·변조와 관련한 안전성을 점검한 결과 대부분의 원전에서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었다”며 “제어케이블 등 안전에 영향이 있는 부품은 성능 재시험 중”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신고리 1, 2호기와 신월성 1, 2호기 등 4기의 원전 재가동이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온 국민이 더운 여름에 이어 추운 겨울을 보낼 판이다.
국회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법(김영란법)’을 강화해 통과시켜야 한다. 올해 7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 법의 수정안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 없이 부정한 돈을 받을 경우 과태료만 내면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서 원안에서 후퇴했다. 정부는 온갖 부정부패의 ‘전범’ 같은 이번 원전 비리를 부패 척결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