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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팩트만 수정… ‘이념 불씨’ 그대로

입력 | 2013-09-12 03:00:00

■ 교육부, 한국사 교과서 8종 재검토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정부가 개입해 한국사 교과서 8종 모두를 수정, 보완하는 것으로 일단 봉합됐다. 당초 교학사 교과서가 도마에 오른 이유는 이념 편향성 논란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사실관계만 점검해 수정, 보완하겠다고 밝혀 논란의 진앙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 진영 간 갈등이 계속 될 가능성이 높다.

○ 논란이 커지기까지


올해 초부터 민주당과 일부 좌파 진영은 검정이 진행 중인 교학사 교과서에 비판의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집필진이 보수 우파 성향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교과서가 5월에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 본심사를 통과하면서 공세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교학사 교과서가 5·16군사정변을 혁명으로 미화하고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비하한데다 4·19혁명을 깎아내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출간도 안 된 교과서를 두고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8월 30일 국편이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합격 판정을 내리면서 심의 과정을 공개한 결과 이런 소문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교학사 교과서를 비판했던 측은 이 교과서의 사실 관계에 오류가 많고 무단 도용한 자료들이 쓰였으며 포털 사이트의 틀린 내용들을 그대로 담았다고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이례적으로 검정이 끝난 교과서를 다시 수정, 보완하겠다는 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 대립하는 현장

교육부의 개입과 상관없이 정치권과 역사학계, 교육현장의 첨예한 대립은 가라앉을 줄 모른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11일 교학사 교과서의 주집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갖고 이 교수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김 의원은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 수 있고 학생들이 배우기 전에 실수를 교정하는 기회가 됐으므로 교과서가 알찬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교과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좌파세력이) ‘안중근을 테러리스트, 유관순을 여자깡패, 김구를 탈레반으로 썼다’고 공격하고 민주당 의원들도 여기에 동조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민주당 역사교과서 친일독재 왜곡미화 대책위원회 소속 의원 9명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을 항의 방문했다. 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는 우편향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연도와 같은 기본 사실이 틀리고 인터넷 자료를 표절하는 등 기본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9월 안에 검정취소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수 성향의 원로 역사학자 16명과 전직 교육부 장관 7명으로 구성된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 모여 “역사 교과서가 정쟁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표로 참석한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성명에서 “논란의 표적이 된 교학사 교과서는 완벽한 것은 아니나 교육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고 판단된다”고 편을 들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최종 검정을 통과한 특정 교과서의 부분적 오류를 문제 삼아 교육을 정치도구화 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10일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는 ‘뉴라이트 교과서 검토 간담회’를 열고 교학사 교과서에 사실 관계 오류나 편파적으로 해석한 대목이 298건에 이른다고 주장한 바 있다.

○ 교학사 교과서의 운명은

현재 교육부 방침대로라면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 취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실 관계 오류를 수정하는 수순만 밟을 것으로 보인다.

교학사가 출판사 직권으로 문제의 교과서를 수정하거나 발행을 중단할 수도 없다. 집필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학사의 한 관계자는 “교과서를 처음 만들다 보면 오탈자도 많고 오류도 많이 생긴다”며 “그래서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서로 돌려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집필자들은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면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수정할지는 아직 이야기한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교학사가 일부 진영으로부터 희생양이 됐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교학사의 한 임원은 “이번 논란으로 항의전화가 쇄도하고 다른 과목의 교과서까지 채택을 거부하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발행을 아예 접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일선 학교들은 민감한 논란이 벌어진 교과서를 둘러싸고 채택 과정에서 교내 구성원 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김희균·신성미·권오혁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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