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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고 은밀한 그녀들의 이야기 ‘노크하지 않는 집’

입력 | 2013-09-12 14:51:30


외마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렇게 독특한 작품이 있다니!”
‘그녀의 방’ 시즌3 ‘노크하지 않는 집’. 드라마 전시라는 독특한 장르를 표방하는 작품이다. ‘그녀들의 사소하고 은밀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 포함된 동명의 단편을 이야기 전개의 모티프로 삼았다. 배우이자 연출가인 이항나가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괜히 드라마 전시가 아니다. 그러니까, 드라마(연극)와 전시를 모두 즐길 수 있다. 물론 한 장의 티켓으로.
공연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관객은 당황하게 된다. 빼곡한 객석 대신 광활한 무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무대 밖으로는 배드민턴을 쳐도 좋을 만큼 넉넉한 공간에 초록빛 인조잔디가 깔려 있다.

관객은 무대 안(무대 위가 아니다)으로 들어가 미술작품을 감상하듯 세트와 소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무대는 총 다섯 개의 방이다. 각 방에는 한 명의 여자들이 세 들어 살고 있다. 배우들이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까지 무대는 온전히 관객 차지다.

화장대의 화장품을 살펴 볼 수도 있고, 침대에 누워 봐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세면대와 변기에서는 물이 콸콸 쏟아진다. 샤워부스도 있다. 밥솥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오르며 밥이 익는다!

이윽고 드라마가 시작된다. 다섯 명의 세입자들이 한 명씩 차례로 자신의 방을 찾아 들어온다. 미래가 불안한 ‘편의점녀’, 빚 독촉에 시달리며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마트녀’, 너무나 소심해서 하고 싶은 말을 포스트잇에 적어야 전할 수 있는 ‘불면증녀’, 남자친구 때문에 항상 웃고 우는(그리고 늘 술에 취해있는) ‘술녀’, 왕년에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비정규직 학원선생을 하고 있는 ‘학원강사녀’,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그녀를 찾아와 하룻밤 신세를 지는 ‘불청객 후배녀’다.

●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녀’들의 일상 훔쳐보기

이들의 일상은 동시다발로 그려진다. 뚱뚱한 ‘마트녀’가 방안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살빼기 운동을 하고 있으면, ‘술녀’가 잔뜩 취한 목소리로 누군가와 전화로 싸움을 벌이고, ‘학원강사녀’는 ‘후배녀’의 푸념에 맞장구를 치는 식이다.
관객은 무대 주변에 널려 있는 의자에 앉아(극 중간에 옮겨 다녀도 무방하다) 일상에 찌든 여인네들의 온갖 짜증을 숨소리 죽이며 엿보게 된다.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드라마가 끝나면 배우들은 심난한 얼굴을 걷어치우고 생긋 웃으며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재밌게 보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같이 사진 찍으셔도 돼요”라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쉬운 언어, 쉬운 일상을 그리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 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 최고의 미덕은 보고나면 함께 관람한 지인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할 말이 많은 공연이라는 점이다.

아참, 한 가지 더. 이 작품은 문학과 전시, 드라마가 만났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고수들이 뭉쳐 만든 명품 콜라보레이션이다. 1998년 이탈리아 토리노 영화제 대상 비평가상, 관객상과 그리스 테살로니카 영화제 은상을 받은 민병훈 감독, 차세대 무용가로 주목받아온 안무가 윤푸름, 독창적인 영상미학을 선보여 온 김제민 감독, 무대 디자이너 이진석이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노크하지 않는 집’을 관람하실 예정인 독자들께 문제를 드린다. 해답은 공연장에서 직접 스스로의 눈으로 찾아보시길. 9월 22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① 왜 이 작품의 제목은 ‘노크하지 않는 집’일까
② 왜 배우들은 중간에 같은 씬을 반복할까.
③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모든 배우들이 묵묵히 TV 화면을 바라본다.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④ 후반부에 왜 배우들은 서로의 방과 배역을 바꿀까.
⑤ 마지막 엔딩(무엇인지는 절대 알려드리지 않는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양형모 기자 ranbi361@donga.com 트위터 @ranbi361
사진제공|떼아뜨르 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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