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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옹프레, 프로이트의 가면을 벗기다

입력 | 2013-09-14 03:00:00

◇우상의 추락/미셸 옹프레 지음·전혜영 옮김/712쪽·3만2000원/글항아리




프로이트의 수많은 저술과 방대한 분량의 전기집을 꼼꼼히 독해하며 프로이트가 감추고 미화하려 했던 그의 벌거벗은 실체를 추적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 그는 프로이트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법칙으로 바꿔치려 했다면서 객관적 과학으로서가 아니라 주관적 철학으로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바라보자고 말한다. 글항아리 제공

버트런드 러셀은 철학과 과학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철학은 과학으로 입증되기 전의 것들에 대한 통찰과 예측이라는 정의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자신의 연구가 철학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자신의 이론이 임상환자들을 통해 보편적임을 밝혀냈고 또 그들을 치유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그래서 생전에 노벨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하기를 바랐건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문학상인 괴테상이었다.

전통철학에 반기를 들었던 아웃사이더의 역사를 6권에 담아낸 ‘반(反)철학사’의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54)는 이런 프로이트의 시도를 망상으로 규정한다. 그는 자신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접목한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르면서도 프로이트의 사상이 결코 객관적 과학이 아니라 주관적 철학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2006년 출간된 프로이트의 전기 전집과 프로이트와 그 제자들이 쓴 수많은 책을 독파하며 프로이트의 민낯을 폭로한다. 프로이트는 평생 자신의 전기를 의식하며 살았다. 인류를 깜짝 놀라게 할 획기적 발견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겠다는 야심으로 온갖 황당한 연구를 펼쳤다. 뱀장어 생식기를 연구하거나 자신이 10년 넘게 복용한 코카인이 인류를 구원할 만병통치약이라는 엉터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정신분석학이 ‘독창적 과학’임을 과시하기 위해 쇼펜하우어나 니체 같은 철학자나 셰익스피어나 괴테와 같은 문학가의 명백한 영향을 철저히 부인했다. 특히 열두 살 연상의 니체에 대해선 여러 차례 “과도한 호기심 때문에 그의 책을 멀리했다”고 주장했지만 자신의 첫 대표작이 된 ‘꿈의 해석’ 출간을 일부러 니체 사망 뒤로 미룰 정도로 니체를 의식했다.

하지만 이런 자취를 남기지 않기 위해 관련 기록을 용의주도하게 폐기하거나 조작했다. 그는 1895년 자신의 14년 연구 결과를 전부 폐기하며 희열을 느꼈다는 편지를 남겼고, 자신을 숭배한 제자 어니스트 존스에게 자신이 제공한 정보만으로 1500쪽에 이르는 전기를 쓰게 해 자신에 대한 신화를 조작했다. 심지어 그가 치료했다고 주장한 환자의 수와 사례가 상당수 조작됐음이 드러났다. 게다가 프로이트는 처제와 몰래 바람을 피우면서 부자만 상대한 속물 부르주아에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은밀히 지지하는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

옹프레는 프로이트가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성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딸에 대한 성적 환상을 억제하며 살아갔던 자신의 특수한 사례를 인류의 보편적 상황으로 일반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려 했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위대한 사기꾼’에 불과할까? 저자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책을 끝낸다.

“철학적 체계는 시간이 지나면 반박되고 구식으로 전락해 사라지지만 그 철학적 체계를 만든 인간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철학은 죽일 수 있어도 철학자를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으니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