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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차기전투기)사업 정말 미치겠네

입력 | 2013-09-13 16:17:00

꼬이고 또 꼬여 박근혜 정부 골칫덩어리로 전락…남는 건 눈치 살피는 관료주의뿐




차기전투기 도입 사업의 최종 후보기종으로 선정된 미국 보잉의 F-15SE.

“우리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F-35 내정설’을 집요하게 거론하며 비판하던 언론들이 막상 F-15SE가 최종후보가 되자 ‘스텔스 기능이 부실한 30년 된 전투기’라며 공격한다. 어제는 과도한 예산지출을 염려하다가 오늘은 돈은 문제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식이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군과 언론 모두 명확한 원칙이나 개념 없이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차기전투기(FX) 도입 사업 최종후보 회사로 보잉을 선정한 8월 하순, 이번 입찰에 관여한 한 정부당국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정확히 무엇을 위해 전투기를 도입하는지 명확해야 그 조건에 맞는 기종을 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토로. 8조3000억 원을 들여 공군이 사용할 다음 세대 전투기 60대를 도입한다는 이 초대형 프로젝트가 현재 어떤 딜레마에 빠졌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장단에도 춤출 수 없는 형국

사업 진행을 담당하는 방위사업청(방사청)은 그간의 입찰에서 가격 조건을 맞춘 유일한 기종인 F-15SE 구매를 9월 중순 열리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 상정할 예정. 방사청은 사실상 탈락한 록히드마틴의 F-35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와도 가계약을 맺었지만, 방추위에서 상정안을 뒤엎고 다른 기종을 선택할 공산은 극히 낮다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아예 사업을 국회 예산 배정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F-15SE로 최종 결정하거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그간 거론된 F-15SE의 가장 큰 약점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스텔스 성능. 특히 적잖은 비용을 수반하는 엔진흡입구와 꼬리날개 개조작업 등이 방사청과의 기술협상 과정에서 가격을 맞추느라 상당 부분 빠져 스텔스 성능이 더욱 줄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재 공군의 주력기종인 F-15K와 큰 변별점이 없다는 것. 반면 경쟁기종 가운데 사실상 유일한 스텔스기로 불리는 F-35는 엄청난 가격과 지연되는 개발 일정이 치명적이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이 의회에 통보한 한국 판매 60대 가격이 108억 달러로 사업비를 크게 초과한 데다, 2017년으로 예정된 납품 시점까지는 사실상 완성이 불가능한 형편.

그렇다고 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 경우 도입 일정이 2년 이상 늘어나면서 2020년이나 돼야 전력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현재보다 많은 예산이 책정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F-4, F-5 노후기종의 최종 도태시점을 코앞에 둔 상황이다 보니 이러한 지연을 감내하기가 어렵다고 공군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수가 줄어드는 만큼 당장 대북억제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로도 선뜻 발걸음을 내디딜 수 없는 상황. ‘단군 이래 최대 규모 무기도입 사업’이라던 FX사업의 현실은 이렇듯 만신창이에 가깝다. 사업 진행에 관여한 한 전직 공군 관계자는 “한마디로 핵심가치가 사라졌다”고 촌평했다. 무엇을 위해 새 전투기 60여 대를 사오려는 것인지, 이 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가 불분명해진 게 난맥상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도대체 상황은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줄줄이 이어지던 2010년 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서해 진입 등 한미연합군의 대응 훈련으로 긴장 수위가 높아지던 시점이었다. 주요 전력이 전개될 때마다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지하벙커에 은신한다는 정황을 정보당국이 포착했다. 돌이켜보면 가장 결정적 계기는 그 정보가 아니었나 싶다.”

이명박 정부 안보당국에서 일한 전직 핵심당국자의 말. 관련 사실을 확인한 당시 청와대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려면 흔히 ‘특각’으로 불리는 평양 수뇌부 거처의 지하벙커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타격자산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다. 남한 영토나 국민을 상대로 수없이 도발을 감행해온 북한이 미국 영토나 국민을 상대로는 한 차례도 피해를 입힌 적이 없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는 것. 한마디로 최고수뇌부가 ‘도발을 하면 내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믿게 만들어야 도발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개념, 이른바 ‘적극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전략이다.

문제는 한국군이 도입을 추진 중이던 JASSM이나 타우러스 등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지하 수십m 깊이의 벙커까지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점. 이들 순항미사일은 수백km 밖에서 발사해도 열린 창문으로 뚫고 들어갈 정도로 높은 정밀도를 자랑하지만 콘크리트 관통력은 형편없기 때문이다.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체계는 미군이 보유한 벙커버스터 방식의 관통형 폭탄이지만, 이들은 미사일이 아니라 폭탄인 까닭에 목표지점에 매우 가깝게 접근해 ‘머리 위에서’ 떨어뜨려야 타격이 가능하다.

적극적 억제 전략과 내정설 사이

차기전투기 입찰에 참여했던 록히드마틴의 F-35A(위)와 유럽 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반면 S-75, S-125, S-200 등 다양한 대공미사일 방어체계로 겹겹이 둘러싸인 평양이나 양강도, 자강도의 특각 주변 지역은 전투기가 뚫고 들어가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적극적 억제 전략’을 구사하려면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는 게 당시 정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설명.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통해 논의한 이러한 방침을 2010년 하반기에 공식 채택했고, 그해 12월 이상우 당시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F-35 60대 조기 도입’이 위원회의 공식 결론임을 밝히기에 이른다.

스텔스기 도입이 국방개혁 307계획에 정식으로 반영되고 미군이 사용 중인 레이저 유도 벙커버스터 GBU-28 200여 기 도입을 본격 추진하는 등 정부 핵심 방침이 명확해지자, 이 무렵 공군의 기대감은 한껏 증폭됐다. 최신 기종을 선호하는 군 특유의 정서에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조종사 생존율을 자랑하는 F-35의 위력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여기에 주력기종 변경으로 ‘공군 내 역학관계 변화’를 기대하는 일부 군 관계자들의 속내도 영향을 끼쳤다. 그간 F-15K 조종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됐던 다른 기종 조종사들 눈에는 최신 기종 도입 소식이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비친 셈이다.

그러나 이내 불어온 역풍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 핵심에서 특정 기종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일이 이어지자 불거진 ‘사전내정설’이 대표적이다. 줄줄이 이어진 F-35 개발 일정 지연과 해외 주요 국가의 구매 의사 철회, 치솟는 예상가격도 기름을 끼얹었다. 미국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방한해 F-35 구매를 압박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였고, “미 공군도 인수를 거부하는 ‘깡통 비행기’ F-35를 한국이 떠맡게 될 것”이라는 언론의 질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튀어나왔다. 2012년 하반기 대통령선거 일정이 본격화하면서 박근혜 캠프의 안보 분야 주요 참모들이 ‘적극적 억제’ 전략과 선을 긋기 시작한 것. “지금도 미군 자산으로 얼마든지 평양 지하벙커를 공격할 수 있다. 우리가 자체 스텔스기로 이 작전을 수행한다는 건 사실상 미국 측 동의 없이 전면전을 한다는 뜻인데,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책은 이명박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단언이었다.

군사정보회사 IHS제인스의 션 오코너가 분석한 평양 인근의 지대공미사일(SAM) 방어체계 구성도. 방공 미사일의 종류별 방어권역(붉은색, 푸른색 원)이 몇 겹에 걸쳐 평양과 주변 지역에 깔려 있다.

군사정보회사 IHS제인스의 션 오코너가 분석한 평양 인근의 지대공미사일(SAM) 방어체계 구성도. 방공 미사일의 종류별 방어권역(붉은색, 푸른색 원)이 몇 겹에 걸쳐 평양과 주변 지역에 깔려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적극적 억제’ 전략이 공론화하하면서부터 미국 측 전문가들이 쏟아냈던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 서울을 방문해 정부 고위당국자들을 면담했던 에이브러햄 덴마크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군사적 긴장고조 과정에서 남한이 주도권을 쥐게 될 개연성은 매우 낮으므로 억제 개념 변화만으로 북한의 국지도발을 막는다는 건 현실성 없는 목표”라고 비판한 바 있다. 남측의 이러한 움직임에 북측이 더욱 극단적으로 대응해 위기가 심화할 소지가 크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이 무렵 미국 측 당국자들은 한국 정부의 ‘독자 행동 가능성’을 진지하게 우려하기 시작했다. 북측 도발이 전면전으로 이어져 미국이 원치 않는 전쟁에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는 것. 국지도발 공동대응계획 마련 등 당시 양국의 관련 현안 논의가 지연된 데는 이러한 배경이 깔렸다는 게 당시 박근혜 캠프 안보 분야 참모들의 판단이었고, 자신들은 집권 후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이어졌다. 당연히 그 핵심인 ‘평양 지하벙커 타격수단 확보’ 추진력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거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관료사회는 이러한 기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관련 부처 곳곳에서 “F-35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물”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고, 기종 선정이 새 정부로 넘어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었다. 임기 말 일부 MB정부 관계자들의 불투명한 행보도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몇 달 후면 떠나야 할 청와대 직원들이 후보기종 생산회사나 협력업체에 줄을 대려고 시도하는 정황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 이렇듯 사업 자체가 정권교체기의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관련부처 움직임도 혼선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2012년 10월부터 네 차례나 선정 시점을 번복했던 일정 지연이다.

‘MB 유물’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은 더욱 난감해졌다. ‘MB 정부의 유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정부 핵심에서 누구도 이 사업을 적극 챙기겠다고 나서지 않게 됐다는 것. 의견 개진만으로도 특정 업체 편들기로 비치기 십상이다 보니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사정에 정통한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형국, 한마디로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고 촌평했다. 안보당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전임 정부에서 청와대가 직접 FX사업의 추진체 구실을 맡았던 것에 대해 비판적 정서가 강하다. 관련 법령, 규정, 원칙에 따라 공군과 실무부처에서 진행해야 옳지, 청와대가 이러쿵저러쿵 지침을 내리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위기다. 내부적으로 ‘이렇게 가야 한다’고 정리된 명확한 방향이나 비전도 없다. 공연한 오해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 핵심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 같은 그림은 한결 분명해진다.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김장수 대통령 국가안보실장은 2~4월의 북한발(發) 위기와 남북관계 상황 관리에 주력하느라 무기도입 사업에까지 관여할 여력이 없었다는 게 중론.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실과 국방비서관실 등 관련부서가 있지만 큰 틀의 방향을 입안하고 추진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주요 안보현안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역시 업무연관성이 적은 무기도입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는 쉽지 않은 형국. 한 사업 관계자는 “주요 안보참모들이 모두 육군 출신이다 보니 공군 사업에 관심이 적은 데다, 섣불리 나서기 부담스러워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부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김관진 장관의 처지. 이명박 정부에서 ‘적극적 억제’ 전략 실현을 진두 지휘했던 김 장관으로서는 그 대표사업인 FX를 주도적으로 챙기기 쉽지 않으리라는 게 군 당국 주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2011년 무렵 김 장관이 관련 업무보고 등을 통해 ‘조속한 스텔스기 도입 방안’을 주문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까운 상황에서 김 장관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전임 정부 사람이라서’라는 의구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다.

상황이 꼬이자 공군 내부 분위기도 급속도로 식었다. 내심 F-35를 바라는 속내가 만만치 않았던 초기 시각과 달리 ‘노후기종이 도태되기 전 뭐가 됐든 대체기종을 구매해 달라’는 쪽으로 급선회한 것. 물론 여기에는 전임 정부와는 사뭇 다른 최근 청와대 기류를 의식한 측면도 있다는 게 중론이다. 공군이 특정 기종을 선호한다는 ‘오해’가 불러올 수 있는 후폭풍을 염려한다는 뜻이다.

안보부처에서 명확한 방향이나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빈 공간을 채운 것은 예산과 경제문제를 담당하는 부처들의 목소리였다. 대통령실 경제·예산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정부예산 80조 원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공약가계부’에 비춰보면 사업예산을 늘리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제시한 게 그 첫 번째다. 당초 방사청은 총사업비의 20%까지는 국회 승인 없이도 재정부서가 자체적으로 인상을 결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염두에 두고 사업비 증가를 낙관해왔지만, 6월 초 이용걸 청장이 직접 기획재정부(기재부)를 방문해 이뤄진 면담에서 기재부 측은 이를 단칼에 거절한 바 있다.

중·장기 국가안보전략부터 세워야

‘조타수를 잃은 사업’에 남은 것은 ‘예산 초과 기종은 무조건 탈락’이라는 잣대와 절차 및 규정 엄수만을 따지는 관료주의뿐이었다. 거듭되는 논란은 방사청의 운신 폭을 강하게 옥죄었고, 원칙과 절차를 지킨다는 방침을 탓하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뒷말’을 피하는 게 지상과제인 특이한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됐지만, 그 결론인 F-15SE은 이제 새로운 논란을 만들어내는 형국이다. 무엇을 위해 차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는지 알 수 없는 기묘한 현실. 한 전직 안보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무기도입은 하위변수다. 먼저 우리에게 닥친 위협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큰 틀의 국가안보전략을 설정하고, 그 기조 하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무력 수단은 무엇이며 어떤 형태의 전쟁을 수행할지 정하는 군사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자원을 배분한 뒤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는 게 무기도입이지만, FX사업은 이 틀에서 완전히 이탈했다. 당장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인지, 주변국과 전력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부터가 모호한 탓에 논란만 가중되는 것 아닌가. 이제라도 안보당국 핵심에 중·장기 전략과 거시적인 로드맵을 만드는 메커니즘이 필요한 이유다.”



스텔스기 개발과 동북아 군비경쟁
서로가 명분 내세워 전력 강화 악순환

3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한 연례보고서 ‘군사력 균형(Military Balance)’은 아시아 지역을 다룬 6장에서 스텔스기 도입문제에 관해 두 편의 별도 분석을 실었다. 세계 군비 연구의 교과서로 통하는 이 보고서가 이례적인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최근 동북아에서 스텔스기를 비롯한 차세대 전투기 경쟁이 차지하는 무게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경제력 성장과 대미(對美) 견제논리를 등에 업은 중국이었다. 2011년 1월 스텔스기 J-20의 시험비행에 성공한 중국은 2017년 이후 이를 전력화한다는 계획을 공식화했고 항공모함용인 J-31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일본은 2014년 첫 시험비행을 목표로 신신(心神)이라는 이름의 스텔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편 이와는 별도로 F-35 42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러시아 또한 2010년 1월 시험비행에 성공한 스텔스기 T-50을 2016년 전력화할 예정이다. 이러한 강대국들의 스텔스기 개발에 깔린 근본 배경이 F-22와 F-35로 상징되는 미국의 압도적인 스텔스 전력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눈여겨볼 것은 주변 강대국이 자체적으로 스텔스 기술을 개발해 전력화를 추진하는 반면, 한국은 해외로부터 직수입해 2017년까지 배치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의 압도적 능력이 중국의 개발을 압박하고, 중국의 개발이 다시 일본의 개발과 도입을 압박하는 형국이지만, 한국만은 유일하게 조기 해외도입을 유일한 선택지로 내밀고 있다. 문제는 기술개발과 해외도입의 의미가 사뭇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패할 수도 있고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될 확률도 높지 않은 자체 개발에 비해 해외도입은 대부분 계획시점까지 전력화가 가능하다. 한국은 중국의 스텔스기 개발을 의식해 도입을 결정한다고 해도, 중국은 거꾸로 일본과 한국의 조기 해외도입 계획을 의식해 더욱 강도 높은 군비증강 계획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미 미군의 최첨단 항공전력이 배치된 한국과 일본의 추가 공군력 강화를 중국 군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명박 정부 안보당국 핵심에서 일했던 한 전문가의 말이다.

“사실 주변국 때문에 스텔스기 도입을 추진한다는 논리는 국제정치적으로 좀 더 정교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응하려고 전력을 강화하고 중국은 미국의 군사적 봉쇄를 의식해 군비투자를 늘리지만, 그와 동시에 중국과 한국, 일본 군 당국이 서로의 의도를 과대평가해 군사력 강화논리로 재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연쇄고리가 최근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폭발적인 군비증강의 한 배경이다.”

군비경쟁 폭발이라는 상황 자체를 구조적으로 재편할 큰 틀의 안보전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6자회담 등 북핵 논의의 조속한 복원이 절실한 또 하나의 근거다. 나아가 2007년 2·13 합의 등을 통해 거론된 6개국 안보협력체 창설안을 되살리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테이블에서 공동 논의를 통해 오해를 줄이고 불필요한 경쟁을 최소화하자는 요구는 주변국 대부분이 경제성장 정체로 재정압박을 받는 현 상황에서 가장 큰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문제를 더 큰 틀의 논의를 통해 해소하는 거시적 비전이 필요한 이유다.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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