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일요일 맑음. 신선놀음. #75 써니 킴 ‘지렁이’ (2012년)
랩과 판소리의 한판 대결이 펼쳐진 ‘랩판소리’의 열띤 무대. 레드 불 제공
10년 전, 우리는 신선놀음을 했다. 취업이나 유학 준비를 한답시고 학과 연구실에 기생하며 허구한 날 술잔을 기울였으니. 내가 랩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돌아보면 그 무렵 동기 Y와의 술자리 말장난이 발단이었다. 비록 둔중한 비트는 없었지만 술집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타고 넘으며 우리는 입말로 운율을 맞췄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이번에도 그 입씨름의 합을 맞춰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에는 한 음료 회사에서 진행한 세계 최초의 랩과 판소리 대결 현장을 찾았다. 이름하여 ‘랩판소리’. 서울 서교동의 라이브 클럽에서 8명의 래퍼와 7명의 소리꾼이 맞붙었다. 대회는 16강전부터 토너먼트로 진행됐다. ‘SNS’ ‘첫사랑’ 같은 시제가 주어지면 래퍼와 소리꾼이 1분씩 입담을 주고받아 승패를 가렸다. 힙합 반주에 맞춰 한 차례, 국악 반주에 맞춰 한 차례씩 ‘배틀’이 돌아갔다. 무대 뒤 스크린으로 60초가 카운트다운되는 동안 래퍼와 소리꾼은 각자 관객의 귀를 붙들기 위해 노력했다. 객석의 문자투표 결과가 승패를 갈랐기 때문이다. 힙합 반주에서 프리스타일 랩 실력을 보여준 래퍼들은 국악반주가 나올 때마다 “내가 이 판소리 비트, 한 달 동안 들었는데 도무지 뭔지 모르겠어. 그냥 내 식대로 할게”를 입버릇처럼 말했고, 소리꾼들은 힙합 반주가 나올 때 “판소리에도 랩이 있어. 판소리의 매력을 보여줄게”라고 호언했다. 결국 최종 우승자는 소리꾼 중에서 나왔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