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파문]■ 사표수리 미뤄지자 평검사회의 보류
검찰 간부들과 일선 검사들은 총장의 사퇴 소식이 알려진 직후만 해도 총장이 혼외 자식에 대한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감찰’ 카드를 꺼내 사퇴하게 한 것은 부당하다며 거세게 반발해왔다. 하지만 청와대의 사표 수리가 미뤄진 이상 섣불리 집단행동에 나서면 채 총장에게 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한 검사는 “원래 검사들의 주장이 ‘진상 규명 후 총장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였던 만큼 청와대 발표로 그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됐기 때문에 당장 행동에 나서기는 부담스럽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하지만 갑작스러운 감찰 지시는 부당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 법무부와 청와대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 뒤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검사장은 비공식적으로 평검사들에게 집단행동을 자제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동욱 검찰총장
14일 검찰 감찰 업무 실무자인 김윤상 대검찰청 감찰1과장(24기)은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이 ‘부당한 압박’이라고 비판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이프로스)에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감찰에 착수하기 전) 상당 기간의 의견 조율이 선행되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하는데 검찰 총수에 대한 감찰 착수 사실을 (감찰 실무자인 본인은)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는 내용의 항의 글을 올렸다. 또 김 과장은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설 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며 사의를 밝혔다.
김 과장의 연수원 동기인 박은재 대검 미래기획단장(24기)도 같은 날 이프로스에 올린 ‘장관님께’라는 글에서 “총장의 정정보도 청구로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검찰이 오히려 장관 결정으로 동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사안의 경우 유전자 감식, 임모 여인의 진술 확보는 감찰로는 불가능한데 객관적 자료를 확보할 감찰에 대한 치밀한 생각도 없이 감찰을 지시한 것이라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며 “이는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을 훼손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검찰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13일 밤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은 수석검사 주최로 회의를 열고 △의혹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장이 임기 도중 사퇴하는 것은 조직 안정을 위해 재고돼야 하며 △법무부 장관의 공개 감찰 지시로 검찰의 정치 중립성이 훼손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는 집단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가 15일 일단 서울서부지검 평검사 회의의 요구사항을 일정 부분 반영한 모양새의 발표를 함에 따라 이날 열릴 예정이던 서울북부지검과 수원지검의 평검사 회의는 긴급히 보류됐다. 하지만 방법론이 담기지 않은 채 모호하기 그지없는 청와대의 ‘사표보다 진실규명 우선’ 방침이 기대에 어긋나는 내용으로 채워질 경우 검사들의 반발 움직임에 다시 불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