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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편들면 종북 동조, 규탄땐 국정원 옹호… 총학의 딜레마

입력 | 2013-09-16 03:00:00

■ ‘규탄 성명’ 늘고는 있지만…




전국대학총학생회모임은 13일 광주 동구 대의동 옛 전남도청 앞에서 종북 세력 규탄 및 국정원 개혁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사태는 진보 성향의 대학생들에게 심각한 자기 정체성의 고민을 던졌다.

전국 대부분의 대학 총학생회(이하 총학)는 그동안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으며 이념적 현안에 대해서도 진보 성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 의원 사건과 관련해서는 확실한 입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의원 편을 들자니 국민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데다 학생들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이 의원을 규탄하자니 보수정부나 국정원의 편을 드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 끝에 이번 이석기 사태에 대해 규탄 성명을 내고 종북 세력과의 ‘선 긋기’에 나선 총학이 늘고 있다. 가장 먼저 ‘선 긋기’에 나선 곳은 6일 이석기 규탄 성명을 발표한 고려대, 동서대 등 서울, 부산 지역 8개 대학. 이어 11일에는 건국대 총학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했다. 건국대 총학은 “이 의원의 발언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안보관을 벗어난 내용이고 좌우, 진보, 보수를 떠나 명백한 이적행위”라며 “그의 상식 밖의 안보관은 규탄받아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전국 60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전국대학총학생회모임(이하 전총모)도 13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북 세력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통합진보당 해체, 안보·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국정원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세종대, 공주대, 전북대, 호남대, 동의대, 경북대 등 전국 14개 대학 총학생회장이 참석했다.

전총모는 이날 종북세력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통진당 해체를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이 의원이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 군사비밀을 알아내고 전쟁 준비를 지시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며 “통진당은 국민 앞에 사과 없이 이석기 의원 변호를 자처하는 등 사실상 종북세력과 구분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통진당과 뜻을 같이하는 몇몇 학생단체는 침묵하며 눈치만 볼 뿐 누구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에 대해 말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종북세력과 동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총모는 이날 국정원에 대한 철저한 개혁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종북과의 선 긋기를 하지 않으면 총학을 포함한 진보세력 전체가 종북세력과 한 묶음으로 엮여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총학의 고민이 담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이석기 규탄 성명 발표에 대해 논의 중인 대학 총학은 연세대 한양대 한국외국어대 KAIST학부 등 4개다. 한양대 손주형 총학생회장은 “우리 총학은 헌정 사상 최초로 현역 국회의원이 내란 음모혐의로 구속된 사태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돼 이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가 확정되면 그에 맞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고은천 회장도 “이 의원 사건에 대해 언제, 어느 정도의 규모로 규탄 성명을 발표할지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총학은 이 문제와 관련해 함구했다. 가톨릭대 경기대 광주교육대 서울대 서울여대 숙명여대 성공회대 서울과학기술대 전남대 제주대(이상 가나다순) 등 10개 대학은 본보 취재팀에 “이석기 사건과 관련해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대 김형래 총학생회장은 “수사기관을 통해 현재 수사가 잘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총학에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전남대 양군재 부회장과 가톨릭대 이상민 회장은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였다. 제주대 유병선 회장은 “통합진보당을 비판하는 것에 앞서 사실 확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상대 경희대 덕성여대 동국대 동덕여대 부산대 이화여대 창원대 등 8개 대학은 본보 취재에 응답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석기 사건은 진보 진영에 대해 종북과 확실히 선 긋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되지 못한 채 종북과 건전한 진보가 ‘반(反)정부’라는 깃발 아래 혼재돼 있는 한국 사회 운동권의 생리상 그런 확실한 선 긋기는 쉬운 선택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통진당은 지금까지 진보라는 테두리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종북’이란 이미지가 확고해졌다”며 “총학이 이에 동조하면 종북으로 비난받을 것이고 반대하면 그동안 총학의 진보 이미지가 엷어져 행동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연상 기자·광주=이형주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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