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민 정치부 기자
오후 4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재로 각 캠프 실무진이 참석한 긴급 토론 규칙 논의가 있었고 3자 토론을 양자 토론 형태로 확 바꿔버렸다.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준비해 온 모든 토론 구상이 다 흐트러져 버린 상황에 격노했다. 격노의 대상은 이런 협상을 수용해버린 참모들이었다. “도대체 누구의 참모냐”는 이야기까지 했다는 말도 들린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토론회 불참 의사를 밝혔고 참모진은 회담 불참을 상정한 메시지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토론회를 한 시간도 채 남기지 않은 오후 7시 넘어 회담 참여를 참모에게 통보했다. 운전사는 삼성동 자택부터 토론 장소인 여의도까지 16분 만에 도착할 정도로 속도를 냈다고 한다. 그때만 떠올리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참모가 많다.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인사들은 친박 인사들에 대해 원래 의존도가 낮았고 신뢰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 핵심 측근은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원래 친박이 없었다.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준 사람과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12일 수의를 입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비리 혐의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다. 박영준은 이명박(MB) 정부 때 ‘왕의 남자’로 불리며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청와대를 주물렀던 ‘실세’였다. 그는 대통령의 재가(裁可) 없이 ‘행동’부터 옮길 수 있었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여왕의 남자’는 없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임 비서실장에 비해 역할이 커진 김기춘 실장이 여왕의 남자 1순위로 거론되지만 측근들은 대통령이 도를 넘는 권한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과연 박 대통령의 ‘나 홀로 정치’ 실험이 끝까지 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