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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염재호]글로벌, 나가지 말고 불러 모으자

입력 | 2013-09-17 03:00:00

우리가 정보통신 강국인데 기술 국제화 위해 외국에 R&D 센터 구축?
노키아 전철 밟지 않으려면 이제는 발상의 전환 필요
국내에 기술개발 인프라 설치… 외국인력-회사 몰려오게 하자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탤런트 김혜수 씨가 주연을 맡아 비정규직 사원의 직장생활을 그린 드라마였다. 비정규직은 계약직으로서 시간제 근무를 한다. 정규직보다 임금이 적고 정규직이 받는 각종 혜택도 받지 못한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아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최대 소망은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비정규직 사원이 프리랜서로서 누리는 자유가 오히려 정규직 사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경제적 이익보다 조직문화나 규율로부터의 자유로움에 더 큰 가치를 둔 것이다.

이전에는 20대 후반의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초조해하고 인생의 낙오자처럼 취급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결혼보다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당당한 커리어 우먼들이 많다.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것보다 화려한 싱글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발상의 전환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혁신을 낳는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많은 사회적 양태(樣態)들이 변화하고 있다. 조직, 노동, 산업, 문화 등 모든 것들이 바뀌고 있다. 변화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새로운 해결방법을 요구한다. 이럴 때 기존 틀에 얽매이다 보면 해결방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곤 한다. 하지만 새로운 ‘이노베이터(혁신가)’가 나타나 틀을 깨면 그때서야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이해를 한다. 콜럼버스의 달걀이 바로 그것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바꾼 것도 이런 발상의 전환이다.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포착해서 기술에 접합시킨 것이다. 이제는 기술개발을 통한 변화가 아니라 사회수요가 변화를 주도한다. 그래서 인문학을 기술에 융합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를 제일 먼저 만들었고, 노키아도 스마트폰 개발을 안 한 게 아니다. 문제는 기존의 틀에 집착해서 시대와 사람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에 선두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우리 산업의 패러다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기존 산업의 틀을 바꾸기 위해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있다. 창업국가 이스라엘의 모델도 벤치마킹했다. 이스라엘이 실리콘밸리에 기술을 수출하고 세계적으로 높은 기술경쟁력을 보이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미래창조과학부는 우리가 이제 세계의 정보통신기술(ICT)을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글로벌 ICT 전략을 추진하려고 한다. 실리콘밸리 등 전 세계 ICT 연구개발(R&D) 현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노키아의 글로벌 전략과 유사하다. 하지만 몇 년 전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하고 핀란드 국민총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던 노키아의 글로벌전략에 대해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명하는 것을 목격했다. 노키아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미국 유럽뿐 아니라 인도 등 값싼 기술 인력이 있는 곳으로 R&D를 널리 확산했다. 문제는 투자는 방대했으나 초점이 없었고, 자국에서 하던 기술개발이 외국으로 유출돼 핀란드 경제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험으로 볼 때 우리도 세계적으로 기술 주도를 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접근보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술국제화를 위해 실리콘밸리에 진출하고 외국에 R&D 기지를 구축하는 것보다는 우리나라에 글로벌 R&D센터를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ICT에서 가장 앞서 가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에 와 보면 미래를 먼저 살아보는 것 같다고 외국의 젊은이들이 이야기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환경, 이미 시작된 24시간 사회, 외국인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은 다양성 등 살아볼 만한 미래사회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외국의 뛰어난 ICT 기술인력과 회사들을 한국으로 불러 모아 우리 기술과 융합하여 세계적 기술로 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송도가 되었건 새만금이 되었건 대규모 글로벌 ICT R&D 파크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리빙 랩(Living Lab)’이 사회적 수요를 선도해 나가도록 기술개발 인프라를 깔아주자는 것이다. 나가는 글로벌이 아니라 끌어들이는 글로벌을 이제는 우리도 할 수 있다.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이 세계지도를 거꾸로 보자고 제안한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뒤집어 보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보았으면 좋겠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aehoyeom@iclou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