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아버지,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니가 신문사에 보낸 편지를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었어요. 어머니는 ‘제 아이는 현재 검찰총장인 채동욱 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이’라고 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뇨? 저는 아버지가 검찰총장이 됐을 때 뛸 듯이 기뻤어요. 아버지가 나쁜 사람 혼내 주는 검사 중에서도 최고 짱이 됐잖아요. 우리 반 애들은 무척 부러워하는 눈치였어요.
아버지가 검찰총장이 된 후 우리 가족은 사실 조금 피곤했어요. 여의도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할 때 서울 삼성동에서 도곡동으로 이사를 갔고, 거기서 다섯 달만 살다가 다시 미국까지 왔잖아요. 어머니와 떨어져 이모와 함께 뉴욕에서 사는 게 불안했지만 아버지처럼 높은 사람이 되려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꾹 참았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당장은 떨어져 살지만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살 날이 올 것”이라고 늘 얘기하곤 했죠. 우리 가족은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 왜 사람들이 자꾸 수군거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예전에 부산에서 어머니를 만난 것까지도 트집을 잡는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아버지, 어떤 사람들은 제가 진짜 아버지 자식이 맞는지 머리카락 뽑고 피도 뽑아 검사해보자고 한다는데 정말 미친 사람들 아닌가요? 이모가 그러는데 어머니는 그것 때문에 울고불고 야단이었대요.
아버지, 근데 전 진짜 피 뽑는 것은 싫거든요. 사람들은 제 피와 아버지 피가 같다는 것을 왜 조사하려고 하나요? 검사 뒤엔 유전자가 조작됐다느니 하면서 또 시비를 붙을 수 있잖아요. 아버지, 그래서 그러는데 저한테 피 검사 하자는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만에 하나 피 검사가 잘못돼 가지고 저하고 아버지하고 다르게 나오면 그 땐 어떡해요? 하루아침에 아버지 없는 아이가 돼 버리잖아요. 여태껏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했는데,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 있을 땐 아버지라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제발 제 부탁 좀 들어주세요.
2013년 9월 16일
뉴욕에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 올림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