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이산가족 상봉 최종명단 교환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최종 확정된 개성 출신 허경옥 씨(왼쪽)가 16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집에서 동생을 만날 때 입을 한복을 매만지며 웃고 있다. 오른쪽은 증손녀와 며느리.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북한군에서 포탄 나르는 일을 하던 박 씨는 강화도까지 내려왔을 때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며 탈출해 남한의 군인으로 전향했다. 이후 천신만고 끝에 북한에서 내려온 막내 남동생에게서 “어머니와 누이동생들이 강화도까지 왔다가 형이 북한으로 끌려간 줄 알고 다시 북쪽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63년. 85세 할아버지가 된 박 씨는 25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단의 최종 명단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여동생 4명 중 2명은 살아 있고, 이 중 1명이 상봉 행사에 나오기로 했다는 연락이었다. 박 씨는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며 “어머니 묘소를 썼는지가 제일 궁금한데 ‘동생분’을 만나면 울음부터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의 더께 속에 멀어진 관계가 어색했는지 그는 동생들을 ‘그분들’이라고 불렀다.
남북한의 적십자사는 16일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추석을 계기로 열리는 제19차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의 최종 명단을 교환했다. 남측 상봉단이 96명, 북측 상봉단이 100명으로 정해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1차 명단 교환 시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한 남쪽 인원이 167명이었는데 북측 가족과 관계가 소원하거나 건강상 이유 등으로 상봉에 응하지 않겠다는 후보자들이 있었다”며 “안타깝지만 96명으로 최종 정리됐다”고 설명했다. 96명 중에서도 추가로 상봉행사를 포기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어 최종 상봉단 규모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남측 방문단은 25일부터 27일까지 재북(在北) 가족을, 북측 방문단 100명은 28∼30일 재남(在南) 가족을 금강산에서 만나게 된다. 남측 최고령자는 김성윤 할머니(95)로 북측의 동생 김석려 씨(80·여)를, 북측 최고령자인 권응렬 할아버지(87)는 남측의 동생 권경옥 씨(83·여), 권동렬 씨(72)와 상봉할 예정이다. 김 할머니의 아들 고정삼 씨는 “어머니가 아주 기뻐하신다. 건강 상태도 좋으시다”고 말했다.
○ “수십 년을 기다려서 이제야…”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은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렘 속에 선물 구입 등 재회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북한의 동생들을 만난다는 허경옥 할머니(85)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뭘 선물로 갖고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달러를 가지고 가도 되느냐”고 되물었다. 김 할머니는 “1·4 후퇴 때 우리 영감이 먼저 북한에서 나오고 나는 이듬해에 아들 하나를 업고 강을 건너서 몰래 (남한으로) 왔다”며 “당시 시집살이를 하다 보니 친정에 있던 동생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왔는데 수십 년을 기다려 이제야 만나게 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정은·김철중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