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효도해도 결국은 다 불효자식… 낼모레 팔십… 이제 퇴장 준비해야지”
“51년 전 데뷔 때나 지금이나 연극판은 달라진 게 없어요. 이것만으로 먹고살 수 없는 건 똑같으니까. 연극에만 일구월심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무대 위에 앉은 신구는 “햄릿(역)이 평생 꿈이었는데 이제 부왕의 유령 역이나 노려야겠다”며 웃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0일 개막한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강원도 집에 돌아와 병으로 시들어간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보낸 마지막 시간을 담아낸 연극이다. 지난해 간암으로 부친을 떠나보낸 작가 김광탁(45)이 삼킨 눈물이 대사 곳곳에 말라붙어 있다.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흰물결화이트홀 무대 위 툇마루에 주연을 맡은 신구(77)와 마주앉았다. 그는 공연시간 90분 대부분을 마당 한가운데 이 툇마루에 누워서 보낸다. 숨쉬고 말하기조차 힘겨워 보이던 그는 다행히 TV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처럼 활기찼다.
“‘꽃할배’ 마치고 요즘 연극 말고는 다른 스케줄이 없어 한가로워서 그럴 거요. 1, 2월쯤 다시 촬영한다 하더라고. 즐거운 일이니 또 해야지.”
―함께 출연한 이순재 씨도 마침 연극(‘시련’) 연출을 하셨어요.
“아마 내일 끝나지? 서울대 동문들이 하는 연극인 것 같던데, 못 가봤네. 시기가 겹쳐서.”
―연극 마지막 장면에서 모자부터 구두까지 온통 흰 옷의 혼백이 돼서 처음으로 멀쩡히 걸어 등장합니다. 그 전까지는 은근히 걱정까지 되던데요.
―TV 출연 이후 바쁘지 않으셨나요. 연극 출연 결정은 언제 하신 건지.
“안 바빠요. 6월쯤 제의받았나. 다른 일정 없으니 망설일 이유도 없었지. 출연 약속한 다음에 대본 봤는데 글이 좋더라고. 김철리 연출도 ‘대본 그대로 가자’고 했어요.”
―6·25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와 어렵게 살아온 극중 아버지는 자상함과 거리가 먼 인물인데요. 실제 좀 그러실 것 같습니다.
“맞아요. 회사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걔가 아직 연극 못 봤어요. 며느리랑 같이 보러 오라 할 참인데…. 모르겠어요. 보러 올지. 그놈도 나랑 똑같이 멋대가리가 없어가지고. 봐도 암말 안 할 거야. 저 혼자 느끼겠지.”
“나도 부모님 생전 잘해드리지 못했어요. 1975년에 돌아가셨는데. 잘한다 해도 돌아가신 다음 생각하면 미진한 부분이 많지. 아쉽고, 후회스럽고. 회한으로 남죠. 그런데 뭐 이제 내가 죽을 나이 다 됐는데 뭐. 허허.”
―동년배 말기 암 환자 역할, 부담스럽지 않으셨나요.
“전혀. 작가가 체험한 그 아버지의 증세를 자세히 물어봤고, 나름 책 뒤져서 찾은 정보를 섞어서 숨 몰아쉬고 하는 환자 연기를 만들었어요. 간암 환자를 실제로 본 경험은 없으니까.”
―체력 부담은 없었는지.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인데, 즐겁죠. 고생은 스태프가 했지. 40여 일 연습했는데, 이 마루를 연습실에 그대로 만들어준 이유정 무대감독 덕분에 동선 익히기가 수월했어요.”
―후배들 연기에서 아쉬운 점은 혹시 없으세요.
“나는 내일모레 팔십이잖아요. 지금 정도 못하면 어떻게 해. 더러 게으른 후배들도 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 야무져요. 옛날에는 뭐 게으른 배우들 없었나. 마찬가지죠. 무대 위에 남은 꿈…? 그동안 올린 것 잘 정리하고 아름답게 퇴장해야죠.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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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 이호성 정승길 서은경 출연. 10월 6일까지. 3만∼5만 원. 02-577-1987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