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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백건우’라 쓰고 ‘슈베르트’라 읽는다

입력 | 2013-09-17 03:00:00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




깊고 두터운 타건으로 가을을 머금은 슈베르트를 들려준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작가 김윤배 씨 제공

어느덧 마지막 곡이었다. 마치 긴 물음을 던지는 듯했던 ‘음악적 순간’ 6번은 긴 안녕을 고하는 듯 여운을 남겼다. 2007년 12월 베토벤 전곡 연주 마지막 날 소나타 32번의 2악장을 연주하던 백건우의 모습과 오버랩됐다.

베토벤과 리스트 이후 백건우가 향한 곳은 슈베르트였다. 도이체그라모폰(DG) 레이블을 달고 발매된 새 음반은 4개의 즉흥곡 D899와 ‘음악적 순간’ D780 2, 4, 6번, 피아노 소곡 D946 1∼3번을 수록했다. 백건우는 가장 슈베르트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숙고를 거듭했고, 그에 따라 순서를 재배열했다.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 프로그램도 음반의 순서와 동일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백건우의 슈베르트’였다.

백건우가 첫 곡인 즉흥곡 D899의 1번을 연주했다. 흐린 날 떠나는 여행의 시작 같은 미지의 궁금증이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이어진 피아노 소곡 3번은 경쾌하게 발산하며 질주하다 미스터리함이 두텁게 중복되는 중간부를 거쳐 다시 경쾌하게 끝맺었다.

음악적 순간 2번은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부분과 애상적인 악구가 교차할 때 음과 음 사이에 바람이 부는 듯했다. 마차를 타고 벌판을 달려나가듯 시작된 음악적 순간 4번은 점차 어두워지는 한가로운 풍경 같은 중간부를 거쳐 다시 빠른 악구로 돌아왔다. 자칫 경박스러울 수 있는 이 곡에서 묵직하게 깔리는 백건우의 타건은 대가다웠다.

즉흥곡 D899의 3번과 2번은 이날의 오아시스 같았다. 물이 흐르는 갖가지 모습을 연상시켰다. 돌과 바위를 인위적으로 거스르지 않고 비켜서 흘러가는 물 같은 그의 내공이 서린 깊은 타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노 소곡 1번은 처음과 끝의 약동하는 생명력과 중간부의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더없이 잘 어우러졌고, 피아노 소곡 2번은 느릿하게 노래하는 듯한 멜로디가 가끔씩 투명하게 빛나며 가슴을 아리게 했다. D899의 4번에서 샘솟는 듯 유려한 타건을 들으며 여행의 끝을 예감했다. 곡은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음악적 순간 6번으로 이어졌다.

백건우의 슈베르트는 달지 않았다. 아첨하지 않는 연주였다. 선선한 9월의 밤바람은 곡들이 머금었던 가을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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