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총장 사생활 문제 결국 정치화… 어떤 정권도 검찰중립 원치 않았다채 총장은 중립 지키는 처신했나… 검사가 권력에 물들면 독립 요원검찰 내부에 적과 동지가 있고, 척결 ‘선혈 낭자’했다니 무슨 뜻인가
배인준 주필
박지원 의원은 그제 국회에서 “청와대 민정비서와 대검 공안2부장이 8월 한 달간 채 총장을 사찰했고, 채 총장은 공안2부장에 대한 감찰을 대검 감찰본부에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17일 “제보자가 이 사건을 직접 알고 있는 검찰 내부인이며 확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국회 법사위에서 발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 주장에 대해 청와대와 대검은 각각 공식 부인했지만 ‘확실한 제보자’가 검찰 내부에 있다는 박 의원의 말까지 거짓말 같지는 않다. 검찰 일각과 야당의 ‘이상한 동거’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10년 전인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평검사 40명을 상대로 이례적인 TV 공개토론을 했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검찰 길들이기’의 직격탄이었다. 김대중 정부 말기 임명된 지 4개월밖에 안 된 김각영 총장은 곧바로 사퇴했다. 취임 직후 기세등등한 대통령이 온 국민 앞에서 불신의 비수를 꽂는데 태연한 척 버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김 총장은 퇴임사에서 “인사권 행사를 통해 수사권을 통제하겠다는 새(노무현) 정부의 의사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검사들은 목숨까지는 아닐지라도 직(職)을 걸 만큼은 치열하게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려고 자기희생도 감수해왔던가. 어느 전직 검사는 “검찰이야말로 권력의 화신”이라고 짧게 말한다.
채 총장이 퇴진 의사를 밝힌 다음 날 대검찰청 감찰1과장인 김윤상 검사는 법무부의 감찰을 비판하며 동조 사의를 표명했다. 김 검사가 열거한 ‘사직하려는 이유’를 보면 검찰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김 검사는 “총장의 엄호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선혈 낭자한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내부의 적은 누구일까. 그 ‘척결 대상’은 정파성과 무관할까. 김 검사가 채 총장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것도 검찰 내 불건전한 조직문화의 한 단면을 시사한다.
현 정부의 한 사정 관계자가 “채 총장이 총장 취임 후에도 수시로 야당 의원들을 저녁에 만나 술잔을 나누면서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있다. 이런 발설은 채 총장의 ‘검찰 흔들기’ 주장에 대한 정부 측의 계산된 역공일 수도 있다. 아무튼 양측 주장의 어중간에 실체적 진실이 깔려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글 같은 현실정치 틈바구니에서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하기란 시시포스 신화에서처럼 산꼭대기에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모든 검사들이 내부 문제에서나 수사에서나 스스로 엄정한 중립성을 견지할 때라야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는 기적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미 권력정치에 듬뿍 물이 배고 ‘줄서기의 출세학’에 익숙한 검사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면 검찰의 독립과 중립은 어느 전직 선배검사의 말처럼 영원한 ‘선문답’이요 신기루일 것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