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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기다린 분들 위해… 기쁘게 귀성 포기했죠”

입력 | 2013-09-18 03:00:00

명절 잊고 연휴도 반납… 3년만의 이산상봉 준비하는 적십자 남북교류팀




16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만난 남북교류팀. 열흘도 남지 않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25일) 준비 때문에 추석연휴도 반납했지만 기뻐할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면 즐겁기만 하다고 했다. 왼쪽부터 송제원 오상은 담당, 허정구 팀장, 박애리 담당.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고향 방문요? 이미 충남 금산에 계신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매년 돌아오는 명절 한 번 거르는 것도 서운한데 60여 년을 기다려온 이산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할까요.”

16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만난 허정구 남북교류팀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뒤 평소 50일 이상 걸리던 상봉 준비를 한 달여 만에 진행하느라 주말도 반납한 채 강행군을 계속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북은 이날 이산가족 상봉의 최종 명단을 교환했다. 적십자사는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과 통화하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직원들이 북측에서 의뢰한 재남(在南) 가족 중 상봉 참석 인원을 확정하는 절차를 밟는 동안 각종 문의 전화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허 팀장은 “추석 당일만이라도 팀원들을 쉬게 해주고 싶지만 5명 정도의 직원이 일일이 전화를 돌려 절차를 안내하고 참석자를 확인하려면 빠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3년 만에 재개된 상봉 행사는 적십자사 직원들에게 이산가족 못지않게 반가운 일이다. 이산가족 업무를 담당하는 남북교류팀은 적십자 내에서 인기가 높은 부서다. 허 팀장은 “적십자사가 전 세계에서 다양한 인도주의적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이산가족을 돕는 일은 유일하게 한반도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인 만큼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에 처음 상봉 준비에 참여한 송제원 담당은 명단 교환을 위해 직접 판문점을 다녀오기도 했다. 송 담당은 상봉 대상자 중 김세린 할아버지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나타냈다.

“전화로 상담을 드렸는데 우편접수는 못 믿겠다고 본사까지 직접 오셨죠. 할아버지께서 ‘부모님은 돌아가셨겠지만 친척들 만나서 묘소에 대신 안부라도 전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북측에서 보내온 명단을 받아들자마자 김 할아버지 이름을 찾아보고 아이처럼 기뻐했어요.”

이산가족을 직접 응대하는 고충도 적지 않다. 직원들은 최종 상봉 명단에서 탈락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할 때면 미안함을 넘어 죄책감마저 든다고 했다. 송 담당은 “탈락한 어르신이 화부터 내시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니 처음에는 화가 났다. 하지만 애원하다가 체념하고 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삼킨 적이 많다”고 말했다.

이 팀의 오상은 담당은 지난달 말 본사 민원실을 찾은 조장금 할머니가 1차 상봉 명단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오열할 때 할머니 곁을 끝까지 지켰다. 오 담당은 “어르신들의 애끊는 한탄을 끝까지 들어드리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남북교류팀은 이산가족들이 슬픔을 하소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2004년부터 이산가족 행사 준비를 맡아온 허 팀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인원이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고 털어놨다.

“매년 찾아오시던 어르신이 문득 안 보이실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죠. ‘설마’하는 마음에 알아보면 역시나 세상을 떠나신 경우가 많거든요. 심지어 북쪽에서 찾는다는 연락이 왔는데 불과 몇 달 전에 돌아가신 경우도 있었죠. 당장 남북통일은 어렵더라도 상봉 행사만이라도 정례화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