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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구루메 반구미’

입력 | 2013-09-18 03:00:00

“먹는 건 최고의 치유” 먹방에 열광하는 일본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늘 신중하게 한입 먹은 뒤 ‘폭풍 흡입’을 시작한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은 보 일본 TV도쿄 화면 촬영

‘먹방’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지도 꽤 됐다. ‘먹는 방송’의 줄임말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 그런 모습을 담은 방송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단어다. ‘먹방’은 일본에서 먼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음식 프로그램을 통칭해 ‘구루메 반구미’라고 부를 정도로 먹방의 천국이다. ‘구루메’는 미식가를 뜻하는 영어 ‘gourmet’의 일본식 발음이고, 반구미는 프로그램의 일본말이다.

일본에선 음식 드라마가 분기마다 나온다. 식당에서 연애하거나 복수하는 이야기만 다루는 한국 음식 드라마와 달리 카메라가 사람이 아닌 음식을 샅샅이 훑는, 말 그대로 음식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이번 분기 시즌3까지 방송된 ‘고독한 미식가’는 먹는 장면만 계속 나오는 ‘먹방의 레전드’급 드라마다. 드라마의 기승전결은 오로지 ‘일한다, 허기를 느낀다, 찾는다, 먹는다, 만족한다’ 이 다섯 단계에만 의존한다. 주인공은 외근을 많이 하는 1인 사업가 이노가시라 고로(마쓰시게 유타카). 그는 거래처와의 업무가 끝나면 늘 “배가 고파졌다”고 외치며 점심 먹을 곳을 찾아 헤맨다.

음식을 통한 타인과의 소통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식당 주인이 말을 걸면 귀찮아하는 편이다. 주인공의 독백이 대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데 그 독백이라는 것도 “오오오” “좋다” “맛있군!”이 대부분이다. 먹는 모습만 줄곧 보여 주는 지루한 구성이지만 허름한 가게에서 입안 가득 음식을 집어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만면에 미소를 짓는 이 중년 신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 옆 테이블에 앉아 나도 주문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이번 분기에 방송된 음식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도 볼 만하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주인공 아키코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하던 식당을 물려받아 빵과 수프를 파는 작은 식당으로 바꾼다. 음식영화 ‘가모메 식당’의 주인공 고바야시 사토미가 주인공이라 마치 핀란드에 있던 가모메 식당이 일본으로 옮겨온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햄과 치즈 치커리 샌드’ ‘시금치 소테 스크램블 에그 샌드’ 같은 군침 도는 샌드위치를 눈으로 먹을 수 있는 드라마다.

남이 뭘 먹는 모습을 보는 데만 30분에서 1시간을 써 버리다니. 하지만 사람들이 먹방에 열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아직 그 매력을 모르는 이들에게 ‘고독한 미식가’ 오프닝에 등장하는 대사를 읊어 주고 싶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신경 쓰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포상의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라고 말할 수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