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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도 속은 가짜 하버드大 의사

입력 | 2013-09-18 03:00:00

“유창한 영어-해박한 의학지식에 의료봉사도 함께 갔는데…”
■ 중졸에 무직 30대 사기혐의 구속




하버드대 의대 성형외과 전문의로 신분을 속인 서모 씨는 2010년 지방 의료봉사활동을 나가 진료까지 했다(위쪽 사진). 또 그는 의사 가운을 직접 제작했다. 가운 오른쪽 가슴에 ‘하버드대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이란 명칭이 영어로 새겨져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항공기 기장 등 수시로 신분을 속이며 사기 행각을 벌인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실제 행적을 다룬 미국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년).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만나는 사람 모두를 감쪽같이 속인 ‘가짜 하버드 의대 전문의’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의 주인공은 서모 씨(31·무직).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던 그는 중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다. 2006년경 그는 갑자기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가 선택한 건 의과대학 진학 준비가 아닌 ‘가짜 의사’ 행세였다.

서 씨는 2007년 국내의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을 ‘미국 시민권자로 하버드대 출신의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해외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입소문을 탄 그의 홈페이지에는 많은 의사와 유학생들이 방문해 그와 친분을 쌓게 됐다. 서 씨는 정식 의사처럼 행동하기 위해 영어와 의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고 의학 관련 서적을 탐독해 홈페이지에 영어로 글을 올릴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일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까지 독학으로 공부했다.

서 씨는 2010년 홈페이지에 ‘하버드대에서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으로 파견을 오게 됐다’고 알린 뒤 명함과 의사 가운을 준비했다. 가운 오른쪽 가슴 부분에는 ‘하버드대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이라는 영문명을, 왼쪽에는 자신의 미국명 ‘니코 반 오톤’을 새겼다. 지인을 만날 때마다 세브란스병원 1층 로비에서 항상 이 가운을 입고 나타났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대화를 나눴던 의사들을 직접 만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의사들은 서 씨의 유창한 영어 실력과 해박한 의학 지식에 깜박 속았다.

서 씨는 2010년 홈페이지에서 알게 된 의사들과 함께 전북 남원시 산내면으로 의료봉사활동을 떠나기도 했다. 홈페이지에 장문의 영어 일기와 철학적 사유를 담은 글까지 올리며 지식인 행세를 했다. 그의 홈페이지를 찾은 방문자는 17일 현재 무려 448만 명에 달한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짜 인맥을 뽐내기도 했다. 친척들의 전화번호를 국내 주요 대기업 경영자의 이름으로 저장해 놓고는 친척에게서 전화가 오면 마치 재벌과 통화하는 것처럼 행세했다. “하버드대 생활이 어땠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미리 인터넷 등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친절히 답해줬다.

서 씨는 2012년 5월 김모 씨(33·무직)와 결혼을 악속하고 동거에 들어갔다. 김 씨는 서 씨가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된 유학생 박모 씨(33)가 자신의 친구라며 소개해 준 여성. 김 씨는 서 씨와 9월 17일 미국에서 올릴 결혼식에 기대가 부풀어 있었다. 서 씨에게 각종 행사비에 쓰라며 약 5000만 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서 씨는 올해 5월 초 갑자기 잠적했다. 수상히 여긴 김 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지인 집에 숨어있던 서 씨를 붙잡아 사기 등의 혐의로 11일 구속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서 씨는 거의 천재 사기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의사 여러 명이 ‘정말로 그가 가짜 의사였느냐’는 문의전화를 하고 있다”며 혀를 찼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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