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1966∼)
내게도 매달릴 수 있는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에는 이슬로
저녁에는 어디 갔다 돌아오는 바람처럼
나무가 있어서 빛나고 싶다
석양 속을 날아온 고추잠자리 한 쌍이
허공에서 교미를 하다가 나무에 내려앉듯이
불 속에 서 있는 듯하면서도 타지 않는
화로가의 농담(濃淡)으로 식어간다
내게도 그런 뜨겁지만
한적한 저녁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필 ‘매달릴 수 있는 나무’일까? 왜 나무를 바라보지 않고, 매달리고 싶어 하나? 여기서 나무는 실제 나무가 아니라 아내나 남편, 혹은 늘 한결같은 애인일 테다. 화자가 ‘아침에는 이슬로/저녁에는 어디 갔다 돌아오는 바람처럼’ 매달릴 나무. 화자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나 때로는/나무가 있어서 빛나고 싶다’. 어디 실컷 돌아다니다 와도 늘 그 자리에 있어 언제고 받아 주고 보듬어 주는 나무. 그런 존재가 있다면 등뼈가 쑥 펴지고 힘이 나련만. 내 존재가 환해지고 기가 살련만!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