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총리 퇴임 후 2건의 사건으로 기소됐다. 인사 청탁과 함께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5만 달러를 받았다는 뇌물 수수 사건은 1, 2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1심에서는 무죄, 2심에서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6부는 그제 한 전 총리가 한만호 씨로부터 현금과 수표, 달러 등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000여만 원을 선고했다. 1, 2심 판결이 무·유죄로 엇갈린 이유는 한 씨의 진술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차이다. 둘 다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심증주의(自由心證主義)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따진 판결이다.
검찰은 한 전 총리를 기소하면서 그의 동생이 한 씨의 수표 1억 원을 사용한 사실, 한 전 총리 측이 한 씨에게 2억 원을 반환한 사실, 한 씨가 한 전 총리 측에 3억 원 반환을 추가로 요구한 사실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1심은 한 씨가 검찰 조사에서는 돈을 줬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안 줬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을 중시해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한 전 총리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때 “정치검찰에 대한 유죄 선고”라고 반겼다. 그러나 2심 유죄 판결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무죄를 받은 사건이 박근혜 정부에서 유죄로 둔갑했다. 정치적 판결이 아닌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비난했다. 마치 박근혜 정부가 사법부를 배후 조종하고, 재판부가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게 지금 이 시대에 가능한 일인가.
한 전 총리는 일국의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다. 누구보다 법과 법의 심판, 삼권분립을 존중해야 할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근거도 없이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고 사법부를 모욕하는 발언을 하는 건 옳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