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돌연 연기했다. 꿈에도 그리던 혈육을 60여 년 만에 다시 만날 기쁨에 밤잠을 설치던 상봉 대상자들의 허탈감이 크다. 북한은 개성공단 재가동을 계기로 모처럼 조성된 남북한 사이의 긍정적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남과 북은 박근혜 정부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 성사를 위해 남측 상봉 대상자 96명, 북측 대상자 100명의 명단을 이미 교환했다. 남은 것은 금강산 숙소 문제뿐이었다. 남측은 고령 상봉자들이 편안한 숙식을 할 수 있도록 외금강호텔과 금강산호텔을 사용하자고 제안했으나 북한은 두 호텔의 관광객 예약을 이유로 해금강호텔과 현대생활관을 고집했다. 해금강호텔은 5년간 투숙객을 받지 않았고, 현대생활관은 이산가족 상봉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숙소로는 적합하지 않다. 남한 상봉 대상자의 평균 연령은 83.3세, 북한 대상자도 80세 이상이 75%다. 북한이 이들의 건강을 염두에 두었다면 숙소 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했을 것이다.
북한은 숙소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남조선 보수패당의 무분별하고 악랄한 대결 소동’ 때문에 상봉 행사를 연기한다고 주장했다. 북측은 또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트집 잡는 것도 모자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거론하며 ‘북남 사이의 화해와 단합과 통일을 주장하는 진보민주인사들을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는 마녀 사냥극’이라고 왜곡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 아닌가. 북한이 내란음모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면 순수한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해 이석기 일당을 ‘통일애국 인사’라고 지칭하면서 두둔하고 나설 이유가 없다.
차제에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포함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상봉 대상자로 선정된 김영준 씨(91)는 가족 상봉의 한을 끝내 풀지 못한 채 사흘 전 숨졌다. 인도적인 사안을 정치 군사 문제와 연계하는 북한에 끌려다니는 한 80, 90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들은 살아생전에 혈육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둘 세상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