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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권순활]‘자유의 敵’들이 챙긴 우리 세금

입력 | 2013-09-22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많은 국민은 묵묵히 납세의 의무를 다한다. 세금이 없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고 결국 우리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경제를 키우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기 위해서도 세금은 필요하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세금의 용처(用處)는 외부의 적(敵)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안보와, 국민이 안심하고 거리를 다닐 수 있는 치안의 확보다. 혈세(血稅)로까지 불리는 소중한 세금이 안보와 치안을 튼튼히 할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깨지고 오히려 공동체를 위협하는 집단에 흘러간다면 납세에 대한 회의감이 커질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수사를 통해 밝혀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반(反)국가 행위는 혐의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눈여겨봐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다. 우리가 낸 세금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극좌 세력의 군자금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다는 점이다. 한 지인은 “과거와 달리 요즘 종북 세력은 국가, 지자체, 기업의 자금을 쉽게 끌어올 수 있어 ‘보급 투쟁’ 측면에서는 이런 천국이 없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석기는 매월 1000만 원이 넘는 세비를 챙겼다. 구속은 됐지만 국회에서 의원직을 제명하지 않으면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 때까지는 계속 돈을 받는다. 그의 입김이 강한 통진당에는 연간 수십억 원의 정당 보조금이 들어갔다. 이석기가 설립한 회사가 벌어들인 매출의 상당 부분도 직간접으로 나랏돈에서 나갔을 것이다.

이석기 세력은 야권연대를 통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당선된 경기도 성남 수원 고양 등 전국의 여러 지자체나 산하 기관에서 힘과 돈이 따르는 ‘완장’들을 찼다. 이런저런 명목의 사업을 한다며 지자체의 자금도 지원받았다. 이념집단에 이권집단 성격까지 더해진 셈이다.

국가를 흔드는 세력이 혈세를 챙긴 사례는 민주화 보상법의 무분별한 적용에서도 드러난다. 반국가단체나 이적(利敵) 단체 활동을 하고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아 국가 보상금을 받은 사람이 400명을 넘는다. 이석기와 함께 구속된 홍순석 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남조선민족해방전선 관련자, 왕재산 간첩사건 연루자, 불법 방북자들이 민주화 유공자로 둔갑했다. 지금처럼 옥석을 가리지 않는 민주화 보상법이라면 이석기 집단의 이번 범법 행위도 언젠가 민주화운동으로 치켜세우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권력에 저항한 사람 중에는 순수하게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지향한 인사가 많다. 하지만 공산주의 신념으로 무장했거나 심지어 북한의 ‘남조선 혁명’을 추종한 세력이 섞여 있었다는 점도 명백한 사실이다. 젊은 시절의 극좌 인식에서 벗어나 자유의 전사(戰士)로 거듭난 인사들의 굴곡진 인생행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지금도 잘못된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석기류(類)의 시대착오적 집단은 사회 전체가 단호하게 응징하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다. 이런 세력이 입에 올리는 민주주의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전체주의적 사이비 민주주의일 뿐이다.

‘이석기 쇼크’는 한국 사회의 안이한 안보 의식에 경종을 울렸다. 철저한 추가 수사를 통해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자유의 적’들이 획책한 범죄의 전모를 밝히는 것과 함께 우리가 낸 세금이 이런 세력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왜곡된 먹이사슬을 끊어 내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정부, 정치인, 국민이라면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