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끝자리에 가족의 소중함 일깨워주는 책 3選◇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박영신 지음/271쪽·1만3000원/정신세계사◇아빠에게 말을 걸다/신현림 지음/245쪽·1만3000원/흐름출판◇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안드레아 N 리치신 외 지음/조자현 옮김/291쪽·1만3900원/예인
뒤돌아보면 아버지는 한결같은 강인한 모습으로 자식의 행복과 성공을 빌어 주신다. 하지만 그 강인함 속에 깃들어 있는 고독과 슬픔은 너무 뒤늦게 알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림은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중에서 딸의 제자들을 배웅하는 아버지의 모습. 정신세계사 제공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소학교밖에 못 나왔고 구십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아버지지만 그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에는 삶에 대한 지혜가 그득하다. “나(저자)는 없어지고 아버지의 말씀만 남게” 쓰려 했다는 저자의 다짐이 행간마다 전해지는 이 책은, 아버지의 육성으로 직접 듣는 듯한 소박하고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로 독자의 콧날을 수시로 찡하게 만든다.
이 책은 절절한 ‘사부곡(思父曲)’이기도 하다. 달걀이 귀했던 시절, 중학교 임원선거에 나서는 딸에게 “유세 잘하라”며 날달걀을 깨 입에 넣어 주는 모습이나, 딸의 수상 소식이 담긴 10년도 더 된 신문지를 임종 직전까지도 소중히 간직하는 모습을 옮긴 대목에서는 그리움과 애틋함이 오롯이 묻어난다.
시인 신현림이 지은 ‘아빠에게 말을 걸다’는 아버지가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 전에 ‘지금, 이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손 내밀라고 속삭이는 책이다. ‘아빠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사는 아버지와 자식들의 삶에 윤기를 더해 줄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31개의 ‘버킷 리스트’를 담았다.
리스트의 면면은 거창할 게 없다. ‘아빠와 요리하기’나 ‘노래방 가기’부터, ‘술 한잔 같이 하기’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가능할 것 같은 일이 대다수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임을 자주 잊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실천을 계속 내일로 미루다가 후회의 순간을 맞는다.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3년 만에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흐름출판)을 썼던 시인이 이번에는 아버지 생전에 책을 낸 이유도 이런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다. “아빠를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문제의식 같은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그저 일상에서 아빠에게 말 한마디 더 걸어보는 작은 노력들은 아닐까” 하는 시인의 말이 가슴속에 오랫동안 잔물결을 일으킨다.
때론 익숙하고 때론 낯선 모습의 어머니를 만나는 이 책의 여정은 우리 내면에 새겨진 어머니의 흔적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흔적을 되짚어 가며 부모로, 또 한 인간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주차장 같은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씩 갇혀 있을 줄 알면서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귀성길에 오르는 이유는 그 흔적의 기원에 대한 원초적 끌림 때문은 아닐까. 귀경길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저 달이 바로 ‘가정의 달(月)’ 아닐까.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