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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오늘, 부모님 꼬∼옥 안아 보셨나요

입력 | 2013-09-22 03:00:00

추석 연휴 끝자리에 가족의 소중함 일깨워주는 책 3選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박영신 지음/271쪽·1만3000원/정신세계사
◇아빠에게 말을 걸다/신현림 지음/245쪽·1만3000원/흐름출판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안드레아 N 리치신 외 지음/조자현 옮김/291쪽·1만3900원/예인




뒤돌아보면 아버지는 한결같은 강인한 모습으로 자식의 행복과 성공을 빌어 주신다. 하지만 그 강인함 속에 깃들어 있는 고독과 슬픔은 너무 뒤늦게 알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림은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중에서 딸의 제자들을 배웅하는 아버지의 모습. 정신세계사 제공

명절 연휴 아들이 승용차를 몰고 고향집을 찾게 된 이후 아버지는 아들의 귀경이 다가오면 슬그머니 아들의 차를 몰고 집을 나서곤 하셨다. 아들이 서울로 떠나려고 나오면 아버지가 주차장에 세워 둔 차는 귀성 때와는 딴판으로 안팎이 깨끗하게 세차돼 있었다. 아버지의 목적지는 집 근처 셀프 세차장이었던 것. 돌아오는 길에는 주유소에 들러 연료통을 가득 채우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멋쩍어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기자)은 차부터 깔끔해야 하는 거다”라고 하셨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그런 이름 아닐까? 투박하지만 어머니와는 다른 결로 자식을 품는 울타리이자 세상살이의 방향을 일러주는 이정표 같은 존재.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다. ‘한국인의 부모자녀 관계’를 전공한 박영신 인하대 교수(교육학)가 3년 전 작고한 아버지를 기리며 생전에 아버지께서 들려준 이야기를 옮겼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소학교밖에 못 나왔고 구십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아버지지만 그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에는 삶에 대한 지혜가 그득하다. “나(저자)는 없어지고 아버지의 말씀만 남게” 쓰려 했다는 저자의 다짐이 행간마다 전해지는 이 책은, 아버지의 육성으로 직접 듣는 듯한 소박하고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로 독자의 콧날을 수시로 찡하게 만든다.

말라리아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결석하지 않으려고 언덕 내리막길을 떼굴떼굴 굴러 등교했다는 학창 시절 이야기, 붓글씨로 달력 뒷장에 ‘논밭은 잡초가 해치고, 사람은 허욕(虛慾)이 해친다’는 문구를 써 걸어 둔 이야기는 이순(耳順)을 넘긴 딸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경계로 삼는 가르침으로 되살아난다.

이 책은 절절한 ‘사부곡(思父曲)’이기도 하다. 달걀이 귀했던 시절, 중학교 임원선거에 나서는 딸에게 “유세 잘하라”며 날달걀을 깨 입에 넣어 주는 모습이나, 딸의 수상 소식이 담긴 10년도 더 된 신문지를 임종 직전까지도 소중히 간직하는 모습을 옮긴 대목에서는 그리움과 애틋함이 오롯이 묻어난다.

시인 신현림이 지은 ‘아빠에게 말을 걸다’는 아버지가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 전에 ‘지금, 이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손 내밀라고 속삭이는 책이다. ‘아빠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사는 아버지와 자식들의 삶에 윤기를 더해 줄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31개의 ‘버킷 리스트’를 담았다.

리스트의 면면은 거창할 게 없다. ‘아빠와 요리하기’나 ‘노래방 가기’부터, ‘술 한잔 같이 하기’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가능할 것 같은 일이 대다수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임을 자주 잊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실천을 계속 내일로 미루다가 후회의 순간을 맞는다.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3년 만에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흐름출판)을 썼던 시인이 이번에는 아버지 생전에 책을 낸 이유도 이런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다. “아빠를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문제의식 같은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그저 일상에서 아빠에게 말 한마디 더 걸어보는 작은 노력들은 아닐까” 하는 시인의 말이 가슴속에 오랫동안 잔물결을 일으킨다.

아버지를 다룬 앞의 두 책과 달리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는 어머니의 얘기를 다뤘다. 미국 여성작가 22명이 각자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회고한 에세이들을 엮었다. 책 속 어머니는 인내와 희생, 자애로움 같은 전통적 미덕의 실천자로 등장할 때도 많지만, 딸들로 하여금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하는 반면교사의 모습도 적지 않다. ‘부자와의 결혼이 최고’라며 사교계로 딸을 내모는 엄마, ‘나쁜 남자’와의 거듭된 재혼으로 역설적으로 딸의 남자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엄마도 등장한다.

때론 익숙하고 때론 낯선 모습의 어머니를 만나는 이 책의 여정은 우리 내면에 새겨진 어머니의 흔적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흔적을 되짚어 가며 부모로, 또 한 인간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주차장 같은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씩 갇혀 있을 줄 알면서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귀성길에 오르는 이유는 그 흔적의 기원에 대한 원초적 끌림 때문은 아닐까. 귀경길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저 달이 바로 ‘가정의 달(月)’ 아닐까.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