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에서 영성을 만나다/황영애 지음/276쪽·1만4000원/더숲
과학의 영역인 화학과 종교의 영역인 영성(靈性)은 따로 풀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다. 그런데 저자는 화학과 영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는다. 66세인 저자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학 강단에서 45년간 화학을 가르쳤다. 화학 원리에서 찾은 인생의 지혜를 담아 교육과학기술부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된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한발 더 나아가 화학에서 인생의 더 깊은 차원인 영성을 발견한다.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와 ‘울지마, 톤즈’의 고 이태석 신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PDP TV는 유리 기판으로 스크린을 만들고 기판 사이에 플라스마를 발생시켜 낸 빛으로 영상을 만든다. 원자에 수만 도 이상의 고열을 가하거나 마이크로파를 쬐어주면 중성원자, 양이온, 전자로 분리되는데 이를 ‘제4의 물질상태’인 플라스마로 부른다.
극한의 상태에서 자신을 부수는 플라스마는 다른 물질과 활발히 반응해 우리 삶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플라스마에서 힘든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사르고 산산이 부서진 이태석 신부를 본다. 이태석 신부는 암에 걸린 제 몸은 돌보지 않고 한센병에 걸려 발가락이 잘려 나가고 굶주려 뼈만 남은 아프리카 사람을 위해 혼신의 에너지를 쏟아냈다.
영성을 얻는 과정도 화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실험에 필요한 고순도 단결정(單結晶)을 얻으려면 불순물 없이 순수한 용액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때론 외부 충격도 줘야 한단다. 그처럼 고난과 시련 속에서 세속적인 집착이나 불순한 생각이 정화된 영성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정제염과 천일염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율법을 넘어선 예수의 사랑과 이해, 용서를 찾고, 금속에 생기는 녹을 보며 나이가 들어도 이웃에 축복 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성찰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낸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