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고민하다 절망… 다른팀 머리빌려 술술”
LG화학 기술연구원 중앙연구소 양세우 연구위원(앞줄 왼쪽) 팀과 배터리연구소 구자훈 수석부장(앞줄 가운데) 팀 연구원들이 원통형 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LG화학 제공
유진녕 LG화학 기술연구원장(부사장)이 연구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다.
대전 유성구 문지동에 자리 잡고 있는 LG화학 기술연구원은 올해로 7년째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기치 아래 산하 전지, 석유화학, 정보전자소재, 중앙연구소 등 4개 연구소 간 협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배터리가 접착테이프를 만나
배터리연구소 원통형 전지 신용도개발팀은 2010년 말 전동공구 업체에 원통형 전지를 납품하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다. 직경 18mm, 길이 65mm의 원통형 전지는 1991년 일본 소니가 세상에 선보인 이후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노트북 등에 다양하게 쓰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이 점점 얇아지고 가벼워지면서 각형 전지가 대세가 되자 새로운 시장 개척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연구에 착수한 신용도개발팀은 곧 큰 벽에 부닥쳤다. 전극과 전극을 감싸는 원통형의 캔 사이에 있는 공간 때문에 조금만 진동과 충격이 있어도 전원이 끊어졌던 것이다. 고민에 빠진 연구팀은 기술연구원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 이 문제를 내놓아 보기로 했다. 신용도개발팀을 이끄는 구자훈 수석부장은 “연구원들은 ‘스스로 해결하고 싶다’는 자존심이 강하다”며 “우리 문제를 다른 팀에 알리기 전에 여러 업체를 섭외해 공동 개발도 해봤지만 기존 방식으로는 차별화된 기술을 만들 수 없었고 결국 고심 끝에 우리 문제를 꺼내 놓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한 사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신용도개발팀의 고민에 관심을 가진 팀은 양세우 연구위원이 이끄는 중앙연구소 점착연구팀이었다. 점착연구팀은 TV나 모니터 등의 소재를 붙이는 접착제를 주로 연구하는 팀. 양 연구위원은 “우리는 전지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래서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팀은 2011년 1월 처음 만난 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양 연구위원은 “한 팀은 전지 전문가, 다른 팀은 붙이는 전문가로 절묘한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양 연구위원이 이끄는 점착연구팀은 열을 가하면 모양이 변하는 열가소성 소재 플라스틱 테이프를 전극에 붙이자는 의견을 냈다. 양 연구위원은 “그동안 전자제품에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테이프지만 배터리 안에 채워진 전해액에 반응해 부풀어 오르는 성질이 있어 한번 사용해 보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전극에 이 테이프를 붙여 캔에 넣자 테이프가 부풀어 오르며 전극과 캔 사이 공간을 메워줬다.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다.
○ 또 다른 장벽
결국 양 연구위원 연구팀은 한 중소기업과 협업하여 테이프 생산 기술을 공동 개발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 전기차 시장도 협업으로 공략
두 팀은 최근 다시 협업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에 납품할 전지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테슬라는 다른 전기차 업체가 쓰는 각형 전지 대신 원통형 전지를 사용하고 있다. 두 팀은 외부 환경에 늘 노출돼 있는 자동차 전지 특성상 습도 등에 강한 전지를 연구 중이다. 신용도개발팀이 만든 전지에 점착연구팀이 새로운 소재를 덧입히려는 것이다. 양 연구위원과 구 수석부장은 “이미 한 번 협업을 했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다”며 “차별화된 전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전=박진우 기자 p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