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1956∼)
진눈깨비는 허천나게 쏟아지고
니미
욕만 나오고
어디로 갈까
평촌을 거쳐 옥동으로 가볼까
코흘리개 새끼들이 아슴아슴 눈앞에 밟혀오는데
즈어매는 이제쯤 돌아왔을지
실없이 웃음만 헤퍼지누나
어디로 가서
몇 개 남은 밥솥을 마저 멕이나
바람은 바짓자락을 붙잡고 핑핑 울어쌓는데
저무는 길가에 철 놓친 수레국화 몇 송이
꺼츨하게 종아리 걷었네
‘진눈깨비 허천나게 쏟아지는’ 어느 낯선 들녘에서 무거운 솥단지들을 짊어진 채, 길을 잡느라 망연히 서 있는 월부 장수라니, 빛바랜 옛날 사진처럼 아득한 풍경이다. 지금은 TV 홈쇼핑 채널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쉽게 상품을 주문해서 배송 받지만, 팔 물건들을 갖고 다니며 가가호호 문을 두드리는 이들과의 거래가 흔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솥단지 하나도 월부로 사는 처지의 가난한 사람이 많기도 했다. 그 가난한 이들이 거래 대상인 만큼 월부 장수들은 교통도 불편하고 곤궁한 고장을 주로 찾아들었을 테다. 얼마나 오래 집을 떠나 있었는지, ‘코흘리개 새끼들이 아슴아슴 눈에 밟힌다’. 밥이나 굶지 않고 사는지…. 아비는 아비대로 이렇게 솥을 팔러 다니고, 애들 엄마 역시 떠돌면서 물건을 파나 보다.
주인공의 처량한 신세처럼 날씨도 ‘개떡 같다’. 욕이 나오고, ‘허천나게’ ‘꺼츨하게’ 등 사투리가 나오니 시가 확 생생해진다. 겨울이 머지않았는데 주인공은 옷도 허술하리라. 지난 추석에는 집에 다녀오셨는지…. 원조 기러기아빠인 월부 장수. 집이 그립지만 빈손으로 어찌 돌아가나. 식구들 먹여 살리자고 떠돌아다니는데, 제 한 입 해결도 힘들고 어쩌면 집에 돌아갈 차비도 없을 터. 그래도 끼니를 때울 겸 마신 막걸리에 취해 허청허청 걸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으리라. 떠돌이 월부 장수의 애환과 객수가 아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