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그리스는 엄격한 긴축정책과 2400억 유로(약 347조 원)에 이르는 두 차례의 구제금융 덕분에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변화를 실감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리스 극우주의자들은 ‘문명의 아버지인 우리가 국제 고리대금업자들에게 팔려 버렸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은 익숙한 수순을 밟는다. 네오나치 계열의 황금새벽당은 2009년엔 별 볼 일 없었지만 2012년 총선에서 15%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하며 그리스의 세 번째 정당으로 부상했다. 경제위기의 가장 극심한 단계가 지나고 극도의 정치적 시련이 그 뒤를 이었다.
일상적인 대립도 발생했다. 보석 사업을 하는 알렉스 솔토스 씨는 행정개혁부 건물 밖에서 시위 중인 파업자들에게 “거리를 점령할 것이 아니라 일해야 한다”고 외쳤다. 보스턴에 거주했던 그에겐 미국식 노동 윤리가 들끓어 올랐다. 이에 학교 교통정리원으로 일했던 한 여성은 “우리가 대체 어디서 직업을 찾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구조조정 대상자였던 공무원 1만2500명 중 직장을 잃은 2000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나 재정감축을 감행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행정개혁장관은 트로이카(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유럽중앙은행·ECB)의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유럽은 그리스에 “긴축하지 않으면 더이상의 돈은 없다”고 다그친다.
올해 그리스의 사회보장기금 부족액은 33억 달러로 추산되며 앞으로 2년간 재정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전보단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돈이 필요하다. 그리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가 시급하다. 150만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실업률은 28%에 이른다.
안도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극단주의’라는 적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리스는 개선되고 있다는 걸 깨닫기 전 이미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며 “위기의 그리스는 ‘가장 어려운 시기’가 아닌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시기’를 맞았다”고 경고했다.
트로이카의 관료들이 이번 주 아테네를 방문한다. 이들이 임금 및 연금 삭감을 추가적으로 요구한다면 그리스는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 독일은 그리스에 강력한 긴축조치를 요구하면서도 그리스를 파산으로부터 구제했다. 이는 유럽을 위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그리스는 바이마르의 운명을 비켜갔다. EU의 평화 구축 역할이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는 현 시점에 EU가 바로 유럽 대륙을 암흑기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확실한 보호수단임을 깨닫는 것이 절실해지고 있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