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입장에선 억울할 법하다. 눈매가 날카롭고 몸놀림이 빠르며 좀 똑똑한 것뿐인데. 1908년 안국선이 발표한 신소설 ‘금수회의록’에는 오히려 인간을 꼬집는 여우가 등장한다. “…외국의 세력을 빌려 의뢰하여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어 하려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符同)하여 제 나라를 망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그것이 우리 여우보다 나은 일이오, 결단코 우리 여우만 못한 물건들이라 하옵네다.”(푸른생각·2013년)
▷토종여우를 보통 ‘불여우’라고 부르는 건 이유가 있다. 온몸의 털이 짙은 갈색이나 붉은색을 띠기 때문. 머리와 몸통은 60∼90cm, 꼬리는 34∼60cm, 어깨 높이는 30∼40cm 정도 된다.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존재 여부가 아리송하다. 6·25전쟁 이후 쥐약(프라톨)을 많이 뿌리면서 주된 먹이인 쥐가 거의 사라졌고,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여우가 먹어 죽는 경우도 많았다. 1989년 야생동물조사 때부터 자취를 감췄고, 2004년 강원 양구군에서 사체가 발견된 게 유일하다.
김재영 사회부 기자 redfoot@donga.com